‘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우리 경제 혹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때처럼 사회적 애도 분위기가 확산하며 내수 소비 심리가 가파르게 얼어붙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업종 부진으로 수출이 악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늘어난 소비가 우리 경제 성장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터라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8년 전인 2014년 세월호 참사처럼 애도 분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성장 경로에 상당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가뜩이나 수출 부진 등으로 4분기 성장률이 0% 또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가 경기침체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내외 긴축과 반도체 수출 둔화 등으로 촉발될 경제 혹한이 예상보다 앞당겨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인근 상점에 휴업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이태원 참사 이후 애도 분위기로 소비 둔화 가시화…”8년 전 세월호 데자뷔”

1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3분기 우리나라 실질 GDP는 전 분기 대비 0.3% 성장을 기록했다. 1분기 0.6%, 2분기 0.7% 등과 비교해 성장률이 반토막 났다. 겨우 역성장을 모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3분기 성장은 반도체 업황 악화 등에 따른 수출 부진 속에서도 민간 소비와 내수가 버팀목이 돼줬다. 내수의 성장률 기여도는 전 분기 1.7%포인트(p)에서 2.0%p로, 민간 소비 성장률 기여도는 0.9%p로 나타났다.

그런데 연말까지 이런 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계속되는 수출 부진에 더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분기 민간 소비 환경마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역시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154명이 목숨을 잃은 대규모 참사로 각종 기업 행사와 단체 모임이 잇따라 취소되는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연말까지 계속되면서 각종 회식·모임 등을 통한 소비를 줄이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가뜩이나 0% 정도의 성장이 예상되는 4분기 경기를 더욱 무겁게 가라앉게 할 가능성이 있다. 황상필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지난 27일 3분기 실질 GDP 성장률 속보치를 발표하며 “올해 2분기와 3분기에 증가한 민간 소비는 향후 금리상승, 물가 흐름 등의 요인에 따라 회복 속도가 완만해질 것”이라며 “경제 성장 경로에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4분기 GDP 성장률이 0% 안팎으로 소폭 마이너스(-) 성장을 해도 연간 2.6% 성장 목표치 달성은 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3분기까지 회복세를 이끌었던 민간 소비가 애도 분위기 등으로 급격히 가라앉으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에도 비슷한 충격이 나타났다. 사고 이후 경제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고, 내수와 민간 소비 부진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당시 기재부 집계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이전인 그해 4월 14~15일 전년 동기 대비 25.0% 늘어났던 카드 승인액은, 사고 발생 직후인 16~20일 6.9%로, 다음 주인 4주 차에는 1.8%까지 내려앉았다. 전국민적 추모 분위기 속에서 지출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소비 위축의 여파는 경기 지표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고 전인 2014년 1분기 민간 소비는 전 분기 대비 0.5% 증가를 기록했으나, 참사가 발생한 달이 포함된 그해 2분기엔 -0.2%로 뚝 떨어졌다. 이로써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마저 둔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해 2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9%를 기록했고, 이어 3분기와 4분기엔 각각 3.0%, 0.5% 증가세를 보였다.

그래픽=손민균

◇ “경제 심리 얼어붙으면 내년 경기 침체 강도 높아질 듯”

이듬해인 2015년 1분기와 2분기까지도 각각 전 분기 대비 0.8%, 0.5% 증가로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 3분기가 돼서야 실질 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4% 증가를 기록하며, 겨우 1%대로 올라섰다. 2분기 ‘반짝 침체’에 그칠 것이란 당초 전망과 달리, 경제 성장률을 비롯한 소비자심리·기업업황지수 등 각종 지표가 1년이 지나도록 사고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당시 연간 성장률 전망치 역시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세월호 사고 직전만 해도 한은과 각종 경제연구소들이 2014년 경제가 전년 대비 3%대 후반~4%의 성장을 전망했으나, 결국 3.3% 성장에 그쳤다.

지금도 이미 부정적 신호는 감지되고 있다. 전날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9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두달 만에 전산업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나 지난 8월 회복세를 보인 듯한 소비 역시 한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모습이었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120.8(2015년=100)로 1.8% 감소했다.

소비 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한은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종합적인 경기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88.8로 전달보다 2.6 떨어졌다. 생활 형편과 경기에 대한 현재 인식과 전망, 가계수입과 소비지출에 대한 전망 등 총 6개 지수로 구성된 이 지수는 100보다 낮으면 장기 평균치(2003∼2021년)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물가 상승과 금리인상으로 소비 회복이 지연될 우려가 있어 향후 경기 불확실성이 굉장히 크다고 보고 있다”면서 “(이태원 참사 여파가 내수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