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9일 새벽까지 중부지방 일대에 최대 400㎜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제 부처들은 9일로 예정돼 있던 주요 정책 발표 일정을 모두 연기하고 재난 극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폭우는 농산물 출하 차질에 따른 물가 상승 자극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인한 경기 하방이라는 두가지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 위험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부지역에 많은 비가 이어지는 9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천이 범람해 차량이 침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부처, 모든 일정 멈추고 재난 극복에 사활

9일 새벽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당초 이날 12시 발표 예정이었던 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 발표를 연기했다. 이날 새벽 출입기자들에게 긴급 공지 문자를 보내 “서울지역 폭우 등으로 인해 부동산관계장관회의 일정을 변경하게 됐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날 새벽까지만 해도 오후 2시로 순연해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 계획이었으나, 폭우 피해 상황을 고려해 아예 일정을 취소했다.

전날부터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침수 피해가 확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부처들은 대책 발표를 미루고 피해 복구 등 대응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9일 오전 1시쯤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부지방 호우 관련 피해 상황과 복구 현황 등을 보고 받고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도로, 철도, 항공 등 분야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국토부는 이날 오후 중 호우 동향을 발표할 방침이다.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도권 일대에는 ‘물 폭탄’이 떨어졌다. 피해가 상당했다. 비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고 하천이 범람해 피해가 막심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9일 오전 6시 기준 사망 7명(서울 5명·경기 2명), 실종 6명(서울 4명·경기 2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강 이남 지하철 역 일부가 침수로 인해 무정차 운영하고, 경부고속도로와 용인서울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부분 침수됐다.

8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8·9월 소비자물가, 7% 상승률 가능성도

이번 폭우로 인해 농작물 생산이 타격을 입어 물가 상승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는 9월 중순으로 때이른 추석까지 앞두고 있어,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 8월,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7% 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강원도 지역의 피해는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대 이상으로 뛰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9일 동해안 등 7개 시군을 제외한 강원 전역에 호우 특보가 내려졌고,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토사 유출과 침수, 고립 등 피해가 잇따랐다. 강원 지역은 가을 추석, 겨울 김장철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고랭지 배추, 무 등 작물들의 주산지다.

전날 농림축산식품부는 8~9월 태풍 등 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는 계절적 특성을 우려해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에 주산지인 전남 해남, 충북 괴산, 경북 영양의 가을배추를 추가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연 재해로 인한 농작물 공급 타격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집중 호우라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김원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원예실장은 “고랭지 채소들이 출하되는 시점인데 작업을 하지 못해 출하량 감소가 예상된다”며 “다만 고랭지 농사는 경사지에서 하는 것이어서 물 피해는 크지 않을 수 있겠지만,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면 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라고 말했다. 병충해로 인한 출하량 감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평창 강릉 태백 등 산지 지역에서 수확 작업에는 애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경사진 지역이어서 물 빠짐이 좋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비로 인해 작물이 휩쓸려가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경기 둔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폭우로 인해 침수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휴가철 소비가 줄어들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양상과 겹쳐 경제 활동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집중 호우가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