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월 7일 오전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재정건전성 회복’으로 맞춰놓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편성하는 2023년도 예산을 640조원대 이하로 편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5년 간 연 평균 8.7%를 나타낸 총지출 증가율을 5%대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확장 재정으로 빈 나라 곳간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채우겠다는 구상이다.

7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2일 국회 제출을 목표로 2023년 예산안 심의를 진행 중이다. 기재부 예산실은 현재 1차 예산 심의를 마치고, 세부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각 부처와 지자체 등이 제출한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토대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최근까지의 정부 구상대로라면, 내년 정부 예산안은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한 올해 예산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새해 본예산이 전년도 지출액보다 줄어드는 것은 13년 만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다음 해 총지출이 전년보다 축소된 사례는 2010년 단 한 번밖에 없었다.

◇ “내년 예산 증가율 6% 넘지 않을 것…고강도 재정 다이어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부는 현재 내년도 예산 증가율을 6%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편성할 방침을 세우고 예산 심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본 예산안이 607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정부 총지출액은 643조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6%를 넘지 않는 5%대 지출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 편성한 2017년 예산 증가율 3.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연 평균 예산 증가율(8.7%)과 비교하면 3%포인트 가량 낮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내세우며 정부 지출 규모를 대거 늘린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재정 지출 증가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이은현

기재부는 건전 재정 기조를 실현하기 위해 강력한 재량지출 구조 조정을 단행할 방침이다. 재량지출은 정책적 의지에 따라 대상과 규모를 어느 정도 조정 가능한 예산을 말한다. 재정지출에서 교부금, 채무상환 등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로, 올해 본 예산 중 절반 정도인 304조5000억원이 재량지출에 해당된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5월 각 부처에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추가 지침’을 통해 모든 재량 지출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최소 10%를 의무적으로 삭감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기재부 당국자는 “인건비 등 경직성 지출을 제외한 모든 재량 지출에 대한 10% 의무 삭감을 통보한대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편성 지침에서 ‘10% 의무적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기재부는 삭감이 어려운 의무 지출에 대해서도 사회보장시스템 활용 확대, 부정수급 방지 등 지출 효율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상태다.

◇ “재량사업 10% 의무감축…한국판 뉴딜 등 구조조정 1순위”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사업과 문재인 정부표 사업의 예산도 대거 삭감될 전망이다. 한국판 뉴딜 사업이 1차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국판 뉴딜 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부터 추진한 정권 역점 사업으로, ‘디지털 전환’과 ‘탄소 중립’, ‘청년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한국판 뉴딜 사업에는 33조70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관가에선 윤석열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지하고 신재생에너지 전환도 속도 조절을 하겠다고 밝힌만큼, 탄소 중립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 기술개발 지원 사업 등의 예산이 삭감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현 정부는 지난 5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하면서 1조1000억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등의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기 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경제수석,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과 사전 환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직접 일자리 사업 예산도 삭감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주도 성장’을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는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달 ‘6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수 증가와 관련해 “직접일자리와 방역인력 등 공공·준공공 부문의 영향이 상당하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해왔다. 지난달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 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확정해 발표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4대 사회보장성기금수지(국민연금기금·사립학교 교직원 연금기금·고용보험기금·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를 제외한 수치다.

기재부가 지난달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7월호)’에 따르면 5월 누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0조8000억원으로, GDP 대비 -5% 수준이다. 이를 -3% 이내로 맞추기 위해선 재정적자를 40조~50조원을 줄여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가 채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다”며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