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경제’에서 ‘저성장 극복’으로, ‘소득 주도 성장’에서 ‘민간 중심 역동 경제’로.

16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은 ‘시장경제 복원’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 가계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구한 문재인 정부와 180도 다른 경제관(觀)을 제시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라는 이념 지향적이고 추상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한 문재인 정부와 달리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경제 정책의 방향성을 ‘성장’에 맞췄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제 활동의 주체를 ‘민간’으로 못 박은 점도 문재인 정부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경제 성장의 주체는 민간이며, 정부의 역할은 민간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확실하게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제 복원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물적자본 투자 중심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가계와 기업 간 불균형을 야기했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지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과도한 규제와 정부 개입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제약해 민간 투자가 빠르게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또 민간의 성장·고용 둔화를 재정으로 대응하면서 민간 활력이 더욱 저하됐고, 일자리의 질이 악화됐다고 봤다.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방향(왼쪽)과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방향.

◇ ‘건전재정’으로 기조 전환…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서 재정 혁신안 발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전환은 기업 감세 등 재정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17년 25%로 올라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할 방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으로 회귀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높은 법인세율을 낮춰 감세를 통한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결별하고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는 작업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는 7월 중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새로운 재정운용 틀을 마련할 방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00조원 이상(44%) 늘어난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관리할 방안 등을 제시할 방침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새정부 임기 5년(2022~2027년)의 재정수지, 국가채무, 지출증가율 등 재정총량 관리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재정혁신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5년 동안 연 평균 10.81% 증가했던 정부 총지출 증가율을 5% 안팎으로 통제하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예산안 발표에 앞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강도 높은 재정 다이어트를 예고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년 간 무분별한 확장 재정이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국가채무 증가세로 이어져, 경기대응 여력을 저하시켰다고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그동안 급격히 늘어난 국가채무, 가계부채 등으로 정부의 위기대응 여력마저 크게 소진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안팎에서는 기재부 예산실이 총지출 증가율을 5~6% 수준으로 묶어두고 내년 예산 편성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8%대인 본예산 증가율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5.0~4.2% 수준으로 둔화된다. GDP 국가채무비율은 53~58% 수준에서 관리되도록 계획됐다. 이와 관련,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은 “재정건전성이나 지출 구조조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6월 말, 7월 초 있을 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스1

◇ 교부금 제도 개편 추진…예타도 기준은 올리되 면제는 신중

재정 다이어트 뿐만 아니라 지난 5년 간 방만해진 공공부문 개혁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부채비율과 총자산수익률 등 사업·재무위험 지표를 토대로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작성해야 하는 기관 중 10개의 기관을 ‘고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하고 집중관리에 나선다. 또 중장기 재무 목표에 따라 연도별 부채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사업 구조조정과 비핵심자산 매각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에 대한 구조조정도 추진된다. 학생 수가 감소할 수록 교부금 규모가 줄어들게 하거나, 교부금을 유·초·중등뿐 아니라 고등교육에도 지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현 교부금 제도는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데 반해 교부금 규모는 늘어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세수를 기반으로 해, 세수가 늘면 교부금도 따라 증가하기 때문이다.

경제성·효율성이 떨어지는 대형 국책사업을 걸러냈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개편도 추진된다.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예타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이 300억원 넘게 투입되는 대형 사업은 예타를 거쳐야 한다.

윤 정부는 경제·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등 예타 대상에 포함되는 사업의 기준금액을 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예타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수를 늘려 재정 투입 사업의 신속성·유연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규제 완화가 재정 누수를 미리 방지하는 예타 제도 본연의 목적을 흔들 수 있는 만큼 예타 면제와 관련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방침이다. 예타가 사업의 적기 추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되, 문재인정부의 ‘예타 면제 중독’은 막겠다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면제된 예타 사업을 액수로 환산하면 105조9302억원에 이른다. 예타 사업이 도입된 이래 면제액이 100조원을 넘은 건 문 정부가 처음이다. 문 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는 직전 두 정권인 이명박 정부(61조1000억원)와 박근혜 정부(25조원)의 예타 면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 내년 하반기까지 국민연금 개선안 마련…주 52시간 근무도 손질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방치했던 국민연금 등 연금 개혁도 추진한다. 다만 이 일정은 내년 하반기까지 넉넉하게 잡았다. 우선 내년 3월까지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하고, 내년 하반기까지 국민연금 개선안을 마련해 공적연금 개혁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타임 스케쥴을 세운 상태다. 연금 개혁 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촉발하는 민감한 이슈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사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를 위해 세제 혜택도 확대한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의 세액공제 대상 납입 한도가 현재는 ‘연금저축 400만원, 퇴직연금 포함 700만원’인데 이를 각각 600만원과 9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구직활동을 한 실업자에게 지급하는 실업급여도 ‘실업자의 노동시장 조기 복귀를 위한 제도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재인정부에서 실업급여와 관련해 ‘지급액 상향 및 지급기간 연장’ 등 수혜 확대에 방점을 두면서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수급자가 늘어난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밀어붙인 주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서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및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 등을 통해 근로시간 운용의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맞도록 근로시간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겠다”면서 “실태조사, 현장분석 및 전문가·노사 의견수렴 등을 거쳐 근로시간제도 개선안을 올해 하반기까지 마련해,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