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대란으로 ‘고물가→고금리→저성장’으로 이어지는 복합적 경제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법인세 최고세율(25%)을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22%로 되돌리는 감세안을 제시했다. 4단계인 과표 구간도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단순화시킬 방침이다.
기업에 감세 카드를 제시한 것은 투자를 확대해 저성장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의 세금 비용을 줄여 원자잿값 상승의 가격 전가를 최소화시키겠다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공정거래법 등 경제법상 형벌을 행정 제제로 전환하고 형량 등을 합리화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기업을 옥죄는 행정 규제를 규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 임의적인 규제 신설을 억제하는 ‘규제비용감축제’, 규제를 지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규제 일몰제’,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 남발을 억제하는 ‘규제영향분석 의무화’ 등 규제 신설 방지 3종 세트를 추진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투자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된 노동∙금융∙공공∙교육개혁도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교육 개혁 ▲금융 혁신▲서비스산업 혁신이라는 5대 부문 구조개혁으로 되살아났다. 고가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징벌성 과세로 변질된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를 정상화한다.
◇민간주도 성장 시동...현행 4단계 법인세 과표 단순화 추진
정부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전반적인 목표를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의 선순환’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부 주도 성장’의 흔적을 지우고 민간·기업·시장 주도 성장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25%로 높아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하기로 했다.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 2000억원 초과 25% 등 4단계인 과세표준 구간도 단순화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과표 200억원 초과 기업에 22% 세율을 적용했던 문재인 정부 이전인 3단계로 환원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주요국보다 높은 법인세 최고세율로 국제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는 경제계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유지됐던 법인세 최고세율 25%는 일본(23.2%), 미국(21%), 영국(19%), 독일(15.8%) 등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5%에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았다. 특히 현행처럼 법인세 체계가 4단계 누진세율로 운영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구조이고, 기업의 투자 여력을 과도하게 축소하는 세금 체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정부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올해 설비투자가 3%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점도 법인세 인하의 당위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올해 2.6%, 내년 2.5%로 갈수록 둔화되는 성장 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감세 등으로 기업의 투자 유인을 보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법인세 인하가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 대해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았던 과도한 부분을 정상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평균 수준으로 되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유보자금 중 투자·임금·상생협력 분야에 지출하지 않은 당기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부과하던 투자상생협력촉진 과세 특례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다. 이중과세라는 경제계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또 배당소득 과세를 개선해서 국내 기업의 외국 자회사 이익의 국내 유입을 유도하고, 다국적 기업의 국내 자회사 이익이 투자 재원으로 활용되도록 할 방침이다.
◇보유세 정상화... 1주택자 종부세 공제 한도 14억원으로 상향
법인세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부자에 대한 징벌 개념으로 운영했던 주택 보유세 강화 정책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도 강조했다. 우선 올해 공시 가격 상승에 따른 1세대 1주택자의 세 부담을 집값이 급등하기 전인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법 개정 없이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들을 내놓았다.
종부세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하향 조정한다. 이와 더불어 올해만 한시로 1세대 1주택자에 대해 특별공제 금액을 3억원으로 정해 종부세 과세 기준 금액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했다. 고령·장기보유자에 대해서는 납부 유예 조치를 하고, 일시적 2주택·상속주택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주택 수에서 산정을 제외해준다.
재산세는 1세대 1주택자 세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에서 45%로 낮춘다. 다음 달 세법개정안을 통해 세율 인하 등의 방침을 담은 종부세 개편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 완화 방침에 대해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 대해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다주택자의 종부세 세수는 2021년에 2020년 대비 3배 늘었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 강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징벌적 측면이 강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규제 남발 막는다...덩어리 규제 해소하는 ‘원샷 해결’제 도입
공정거래법 등 경제 법령상 형벌이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행정 제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및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 적용과 예외 인정 범위를 명확하기 위해 심사 지침도 개정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관련 경영책임자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고, 처벌규정‧작업중지 등 현장의 애로를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업 투자를 가로막은 행정 규제 남발을 억제하는 제도 개혁도 추진된다. 무분별한 규제 신설을 막기 위해 ‘규제비용감축제’를 도입하고 ‘원인 투아웃(One In,Two Out) 룰’을 적용한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때, 예상되는 규제 순 비용의 2배에 해당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완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신설·강화 규제의 영향을 분석할 때 폐지·완화할 규제를 병행해 검토하는 방안을 의무화한다. 부처별 감축 목표율을 200% 내외로 탄력적으로 설정해 자발적 규제 감축을 유도한다.
규제일몰제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신설·강화되는 경제 및 일자리 규제는 재검토 기한 설정을 의무화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규제가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규제를 신설할 때 의무적으로 받는 규제영향분석을 모든 법령 제·개정 시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국회의원들이 제출하는 의원입법도 국회 자체적인 규제영향분석을 선행될 수 있도록 국회 사무처 등과 협의할 방침이다.
자유로운 경제 운영을 위해 다수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가 연관돼 있어 한 번에 해소하기 어려운 ‘덩어리 규제’를 발굴해 관련 제도·법령 등을 통합적으로 정비하는 ‘규제 원샷 해결’ 제도가 도입된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주는 세제 혜택도 확대할 방침이다.
◇ 공공·노동시장·교육·금융·서비스 5대 구조개혁 추진
박근혜 정부에서 제시됐던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부문에 대한 개혁은 문 정부에서 사라졌다가 이번 윤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부활했다. ▲공공·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교육 개혁 ▲금융 혁신▲서비스산업 혁신이라는 5대 부문 구조개혁으로 되살아났다. 노동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근로 시간 저축계좌제 등을 포함하는 근로 시간 제도 개선안을 올 연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금융 개혁의 일환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자본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외환시장 운영 시간도 1단계로 런던시장 마감(한국시간 2시)까지 연장하고 향후 24시간까지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교육 부문은 학령 인구 감소와 무관하게 세금과 연동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사용 대상을 고등교육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서비스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콘텐츠, 관광, 보건의료 등 유망서비스 분야 관련 규제를 전수조사하고, 10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부문에 대한 개혁이 지난 정부 5년 동안 멈춰있으면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취약성이 더욱 악화한 측면이 있다”면서 “새 정부는 더 이상 경제구조개혁을 미룰 경우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