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2차 오일쇼크 이후 41년만의 최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75bp(1bp=0.01%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2.6%로 0.5%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2.7%), 한국개발연구원(KDI·2.8%) 등 정부 부문에서 발표한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62조원에 이르는 2차 추가경정예산안 발표 전에 나온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2.5%)보다는 살짝 높은 수준이다. 가장 최근 전망치를 발표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전망치인 2.7%보다는 조금 낮다.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 기재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2%에서 4.7%로 2.5%p 가량 대폭 끌어올렸다. 한은(4.5%), KDI(4.2%)와 비교해 가장 높다. 이런 경제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 인식으로 시장과 불통했던 문재인 정부 5년 동안과 확연히 달라진 태도라는 평가를 듣는다.

성장 전망을 낮추고 물가 전망을 대폭 올린 것은 거시경제 정책의 무게추를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맞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준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후 16일 소집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인 만큼 총력 대응하겠다”며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을 운용과 함께 공급 측면의 원가 부담 경감, 기대인플레이션 확산 방지 등 다각적 대응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연간 성장률 2.6% “수출 증가세 조정, 투자 회복 둔화”

정부는 16일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지난해 12월 발표했던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놓은 주요 경제 지표 전망치에 대한 수정치를 함께 제시했다.

우선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민간소비는 회복세를 이어가겠으나, 대외여건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성장・교역 둔화 및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수출 증가세가 조정을 받고, 투자 회복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가 한국은행이 제시한 2.7%,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한 2.8%보다 낮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한은, KDI와 비슷하다”면서도 “다만, 정부의 전망이 상대적으로 시기가 늦고 세계 경제가 그사이 더 어려워진 점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1분기 GDP 성장률이 0.6%로 하향 조정된 것도 반영했다”며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2.6%의 성장률을 제시했고, 정책 효과는 이번 성장률 전망치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통관 기준 수출의 경우 연간 11.0%, 수입은 18.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는 “하반기에는 기저 영향, 대외여건 악화 등으로 수출 증가세가 조정될 것”이라며 “수입의 경우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단가 상승세, 내수 개선 등으로 높은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서비스수지 적자 전환 등으로 흑자규모는 작년보다 축소된 450억불 수준으로 관측했다.

설비투자는 연간 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재부는 “설비투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공급망 차질, 세계경제 둔화 및 인플레이션 우려, 기저영향 등으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대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심리위축, 선행지표인 기계수주 증가세 둔화 등을 감안할 때, 빠른 회복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건설투자도 연간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기업들의 양호한 영업실적, 정부 정책지원 강화, 디지털 전환 수요 확대 등으로 R&D・소프트웨어 중심 투자 증가가 늘어 지식재산생산물투자는 연간 4.2%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민간소비는 방역조치 해제, 추경 효과 등으로 2분기 이후 점차 개선돼 연간 3.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는 “물가・금리상승 등은 구매력 제약 요인이나, 추경효과, 양호한 고용・소득여건, 해외여행 재개 등이 회복세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손민균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수요 회복으로 높은 물가 지속될 것”

주목할만한 부분은 정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다. 정부는 종전 올해 전망치인 2.2%에서 두배 이상 올려잡은 4.7%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전망했다. 11년만에 정부의 물가 전망이 4%대로 올라갔다. 4.7% 전망치는 한국은행(4.5%)과 KDI(4.2%)보다 높다. 지난 5월 한국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4% 올라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하반기에도 물가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 등 해외발 공급측 요인에 수요 회복이 더해져 높은 물가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원재료비 상승 영향이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외식 가격에 반영되면서 광범위하게 오름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5월 들어 가공식품 물가는 7.6%, 외식 물가는 7.4% 상승했다.

정부가 경제 성장률은 다른 기관보다 낮게, 소비자물가는 높게 전망한 것은 재정을 투입한 성장률 끌어올리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를 포함한 민생 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한 만큼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높은 성장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의 경제 전망은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했다기보다는 정책 목표적, 희망적 성격이 강했던 터라 시장에서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소상공인 손실보상·피해지원을 위한 재원은 기존 사업의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세계 잉여금, 기금 여유자금 등 기존 가용 재원을 활용한다. 적자 국채 발행을 줄이고 재원을 다양하게 조달해 거시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또 당분간 한은은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용한다.

기재부는 국채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경우 한은과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긴급 국고채 바이백(조기 상환) 등 안정 조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번 올해 2차 추경에서 국채를 일부 상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이를 고려해 하반기에 국채 발행량을 축소하고 만기를 분산해 국고채 바이백을 실시할 방침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국내 경제 수장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수석,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추 부총리,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정책 집중…한은도 빅스텝 가능성?

시장에서는 기재부의 이번 경제전망에 대해 문재인 정부 재임 5년 내내 보여줬던 낙관적인 경기인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기재부는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낙관적인 판단 대신 “우리 경제 성장 기반은 1990년대 이후 주요국 대비 급속히 하락했다”는 분석으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고, 당면한 민생 어려움이 겹쳐 위기에 직면했다는 현실 인식의 변화가 엿보인다.

아울러 성장률 높이기에 급급해 재정 투입 같은 무리한 경기 부양에 집착하기보다는 물가 안정을 통한 경제 체질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고 있다, 연평균 5%에 육박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기재부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자료에 이례적으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방침”이라면서 ‘통화·금통위’ 대응 방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같은 방침이 미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에 대응하기 위한 한은의 빅스텝(50bp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7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3~4주 정도 남아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그 사이 시장 반응을 보고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