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런던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후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려 24시간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외환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한국 증시의 ‘만성적 저평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꼽히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1300원 목전에서 크게 오르내리는 등 환율 불안이 증폭된 상황인 만큼, 외환시장을 개방하면 원화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오히려 외환시장 개장시간 연장으로 거래량이 증가하면 특정한 세력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면서 환율 불확실성도 완화될 것이란 입장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해외 금융기관도 국내 외환시장 참여 가능해진다

16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외환시장 선진화 계획을 담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그간 정부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환시장 제도 개편을 추진해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성공하려면 외환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1~12월 글로벌 금융기관 5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외환시장에 대해 “직접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외환시장 마감 후 환전이 곤란해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MSCI도 이달 1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여전히 역외 외환시장이 부재해 투자 제약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 증시의 선진지수 편입 시 외국인 투자자금이 증시로 최대 61조원 순유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정부는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 허용, 외환시장 개장시간 연장, 공정한 경쟁여건·거시건전성 제도 보완 등을 골자로 한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경제정책방향에는 큰 그림만 제시했고,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시행 계획은 오는 3분기 발표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 금융기관이라는 새로운 시장 참가자가 들어오고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연장되면서 거래 환경이 바뀌는 부분에 맞춰 건전성 제도를 보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외환시장 거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인데, 정부는 마감 시간을 외환 거래 중심지인 런던 외환시장 시간에 맞춰 다음날 2시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1단계로 추진한다. 이후 개장 시간을 24시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시행 시점은 빨라야 내후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 거래시간 연장은 별도의 법령 개정 없이 은행·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이 새벽 2시까지 연장된 거래시간에 맞춰 인력보강 등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기재부의 입장이다. 또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 거시건전성 제도 보완 등 나머지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 중 법령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시행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가 올해 3분기 구체적인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뒤 내년에 외국환거래 법령 개정과 신외환법 마련 작업을 마무리하고, 관련법이 국회에서 같은 해 통과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는 가정 하에서는 2024년부터 외환시장 개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외환시장 개편하면 변동성 줄어들 것”

일각에서는 외환시장을 개방하면 가뜩이나 불안한 환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과 중국의 봉쇄 조치 등의 영향으로 ‘심리적 지지선’인 1200원을 넘어섰고, 4~5월 들어서는 1250~1290원의 높은 수준에서 움직였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치솟은 점도 문제지만, 연준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하루에 10원 이상 크게 오르내리면서 변동성이 커진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환율이 대외 리스크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외환시장에 해외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거래시간이 24시간으로 연장되면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번 외환시장 개편이 오히려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장에 해외 금융기관이라는 새로운 참가자들이 들어와서 거래량이 많아지고,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특정 기관이나 세력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되면서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도 국내 외환시장 마감 후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거래가 이뤄지는데 정부가 이를 일일이 점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지적했다. 오히려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늘어 역외거래 물량이 국내 거래로 흡수되면 변동성 관리가 수월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 기관들이 시장에 참여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시장 안전 장치도 보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