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성장 젖줄인 무역수지가 1분기 내내 적자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현상’이라면서 관망하던 산업자원통상부가 2일 부랴부랴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지난 1일 발표된 4월 수출입동향에서 무역수지가 27억달러 적자를 나타내는 등 무역 적자가 장기화되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내내 무역적자 기조가 이어지면서 4월까지 누적 무역수지 적자가 66억달러에 이르는 것에 수출입 주무 부처가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회의에서 산업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러시아와 동남아 등 원자재 생산 국가에 파견된 상무관들의 현장 보고 내용으로만 회의 결과 보도자료를 채웠다. 수출기업에 도움이 되는 알맹이 있는 대책이 보이지 않은 알맹이 없는 대책이 보이지 않은 동향 보고를 받은 것으로 산업부의 뒷북 대응을 포장하는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긴급 수출입상황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도시봉쇄 조치 등의 영향으로 올해 내내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산업부가 전날 발표한 ‘2022년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무역수지는 26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무역 적자 누계치는 66억1900만달러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1~4월(70억1854만달러 적자)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다. 지난해엔 1~4월 무역수지가 101억달러 이상 흑자를 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도시 봉쇄, 미국의 긴축 재정 행보 등 대외 리스크가 가중되면서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대외 불확실성 지속 여파로 글로벌 경기둔화가 고착화돼 한국의 무역적자 흐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도 산업부는 “글로벌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는 중에도 우리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계속 이어나갔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주요국들도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며 계속적으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했다”며 낙관론을 이어갔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국의 대(對) 러시아 수출 현황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러시아 주재 상무관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융거래 제한과 기술·부품 유입 제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 운송·물류 제한, 글로벌 경제질서에서의 배제 등 국제적인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자동차가 97.3%, 자동차 부품이 87.4%, 철강이 89.2% 감소하는 등 전년 대비 7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장기화되면 러시아 경제의존도가 높은 CIS 국가 등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그 파급효과가 우리나라의 수출입에도 전이될 수 있다”며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러시아 이주 노동자의 송금액이 자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송금 제한 시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국 주재 상무관은 “상하이 지역 봉쇄가 한달이상 지속되면서, 4월 중국향 수출이 3.4% 감소했다”면서 “노동절 연휴 이후 코로나 확산으로 도시 봉쇄가 북경 등 주요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주재 상무관은 “지난달 28일부터 수급불안에 대응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팜유 수출을 금지했다”면서 “국내 식품업계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식품업계에서 2~4개월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장기화될 경우 팜유 국제가격 상승에 따른 수급 불안이 우려된다”고 했다.
미얀마 주재 상무관은 “국제사회의 미얀마에 대한 제재로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통화가치가 하락되자 3월 초 모든 외환계좌에 대해 현지화 환전을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면서 “해당 조치 이후 미얀마 은행은 외화거래를 중단했고, 제조업체는 원자재 수입대금 지급이 어려워졌다. 소비재 수입 업체도 현지 판매가 어려워지는 등 부정적 영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여한구 본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 불안, 국제금리 상승, 개도국 경제불안 등 리스크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불확실성 증가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