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가계부채가 처음으로 8800만원을 넘어서게 됐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쓸 수 있는 돈(처분가능소득)이 늘어나는 속도의 1.7배였다. 특히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빚투(빚 내서 투자)’의 영향으로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2%p 증가했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의 4분의 1 가량은 빚을 갚는 데 사용됐다. 부채가 가장 많은 늘어난 세대는 30대로 나타났다.
16일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조사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말 기준 1가구당 부채는 8801만원으로 전년대비 6.6%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가구당 평균 소득은 6125만원으로 전년(5924만원)보다 3.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용·담보대출 급증... 가계돈 4분의 1 빚 갚는데 사용
부채는 금융부채 74.1%(6518만원)와 임대보증금 25.9%(2283만원)로 구성됐다. 금융부채는 전년 대비 0.8%p 증가했고, 임대보증금은 0.8%p 줄었다. 특히 금융부채는 신용대출과 담보대출이 급증했다. 신용대출은 11.3%, 담보대출은 8% 늘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5분위 가구의 부채는 전체의 44.7%, 소득 1분위 가구는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가구주 특성별로 보면, 40대 가구와 자영업자 가구에서 부채가 가장 많았다.
소득 5분위별 가구소득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1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은 지난해 1294만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줄어든 근로소득을 정부가 지원금으로 메워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분위 근로소득은 전년보다 7.3% 증가한 반면, 정부가 지급하는 각종 지원금과 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은 23.3%나 늘었다. 반면 5분위 가구는 지난해 자영업 업황 부진으로 소득이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17.5%로 전년대비 1.0%p 감소했다. 부채 보유 가구의 원리금 상환액은 1265만원으로 1년 전(1187만원)보다 6.6%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은 5003만원으로 같은 기간 3.8% 늘었다.
처분가능소득은 가계가 세금이나 공적연금, 사회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지난해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계산하면 약 25.2% 수준이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의 4분의 1을 빚 갚는 데에 썼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원리금상환이 생계에 주는 부담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10가구 중 7가구는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원리금상환이 부담스럽다는 응답은 65.5%로 전년대비 2.1%p 감소했다.
◇ 30대 빚 가장 많이 늘어... 영끌·빚투 등 집 구입 영향
가계 자금사정이 가장 팍팍했던 가구주는 30대였다. 30대의 부채는 1억1190만원으로 전년(1억82만원) 대비 11.0%(1108만원) 급증했다. 이는 40대(7.8%), 60세 이상(8.0%), 20대(2.1%), 50대(1.6%)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30대의 부채증감 내역을 보면 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금융대출이 14.1% 증가했다. 40~50대에 보다 소득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내 집 마련을 위한 이른바 ‘영끌’을 통해, 빚을 늘린 가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월세 가격 급등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부동산원의 월별 아파트 연령대별 매입자 수 통계를 보면 20대와 30대의 구매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2019년 30대 이하 전국 아파트 구매 비중은 19만8324건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했으나 2020년에는 33만4576건으로 26%, 올해는 5월까지 12만7912건으로 27%를 점유하고 있다. 그간 수요계층으로 분류되던 40대(25%)를 앞질렀고, 올해는 23%에 머물고 있는 40대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실제 지난해 집값은 그야말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8.35% 상승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1.60% 상승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울의 집값은 지난해만 10.70% 올랐다. 강북 지역(14개구)의 집값 상승률이 11.13%로, 강남 지역(11개구·10.28%)보다 높았다. 서울의 아파트값은 13.06% 올라 2018년(13.56%) 이후 2년 만에 최고로 올랐다. 단독과 연립은 각각 6.81%, 8.18%씩 상승해 모두 2007년(7.08%·8.87%)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전국의 주택 전셋값도 2019년 말과 비교해 6.54% 상승했다. 이는 2011년(12.30%) 이후 9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것이다. 집값이나 전월세 가격이 모두 들썩였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주식시장 호황과 가상자산 거래 증가도 30대의 빚 증가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가구소득 증가 및 여유자금 발생 시 운용 방법으로 응답자의 27.1%가 부동산 구입을 꼽을 만큼 가계금융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며 “30대에서 부동산 보증금 보유율이 증가한 부분이 있고, 주식채권펀드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보유율이 크게 상승한 것이 부채 증가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