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대로 올려 잡았다. 국제유가 상승에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이 겹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기준금리를 연 1%로 인상한 한국은행이 높아진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25일 수정 경제전망을 내고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3%로 예상했다. 지난 8월 전망치(2.1%)보다 0.2%포인트(p) 상향 조정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세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확대되고 가공식품가격도 오름폭이 확대되면서 기존 전망인 2.1%를 상회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은 전망치가 현실화될 경우 연간 물가상승률은 지난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2%대로 올라서게 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 연속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웃돌았고, 지난달에는 10년 만에 3%대로 치솟았다. 그 배경에는 배럴당 80달러선까지 급등한 국제유가와 세계적인 공급망 차질에 따른 생산·물류비 상승, 백신접종 확대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로 살아난 소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간 제로(0) 수준의 초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시중에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린 점도 자산가격 상승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로 제시했다. 이 역시 기존 전망치(1.5%)보다 0.5%p 높였다. 한은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제유가 등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점차 줄어들면서 올해에 비해 다소 낮아지겠으나, 근원물가는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급병목의 영향이 일부 반영되면서 오름폭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했다.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 물가가 오름폭이 확대된다는 것은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1.2%, 1.8%로 예상했다. 근원물가란 소비자물가에서 변동성이 큰 농축산물, 석유류 가격을 제외한 물가다. 근원물가가 올랐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석유제품 등 일부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국제유가의 경우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내년 이후 점차 안정될 것이라고 봤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주요 산유국의 생산 확대에 힘입어 내년 중 원유 수급불균형이 완화되겠으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평균 원유도입단가를 배럴당 71달러, 76달러로 예상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 4.0%로 유지했다. 3%대로 높아진 물가 상승률이 경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국내 경기는 수출과 투자가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는 가운데 민간소비가 회복되면서 견실한 성장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민간소비는 백신접종 확대와 방역정책 전환에 힘입어 회복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수출은 글로벌 경기회복, 견조한 IT 수요 등에 힘입어 양호한 증가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나 국내 경제가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축소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높아진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고려해 내년 1~2월중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시그널(신호)을 보낸 것으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상수지 흑자규모를 각각 920억달러, 810억달러로 제시했다. 내년에는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들면서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도 올해 5%대 초반에서 내년 4%대 후반으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는 서비스수지와 본원소득수지 개선으로 흑자규모가 확대되겠으나, 내년에는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커지면서 흑자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