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검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방역지원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상황에서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위드 코로나 전환’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밀어붙이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방역지원금 등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면 내년 예산 총지출액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605조원에서 최소 62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가 요구하고 있는 지역화폐사업과 자영업자 손실보상 확대 예산이 포함되면 내년 정부 총지출액은 최대 65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년 국가채무 규모가 1100조원을 돌파하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증액요구에 대해 정부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협할 경우 국회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 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비리 관여 의혹을 덮기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카드에 나라 곳간이 처참하게 허물어질 형편”이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당, 이름 바꾼 재난지원금 추진... 내년 예산 650조원 찍나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 일상회복과 개인방역 지원을 위해 ‘전 국민 위드코로나 방역지원금’의 지급을 추진하겠다”며 “방역지원금은 내년 예산에 반영해 내년 1월 회계연도가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국민께 지급해서 개인방역에 힘쓰는 국민의 방역 물품 구입과 일상회복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요되는 재원은 올해 초과 세수분이 예상되기 때문에 초과세수분을 납부 유예해서 내년 세입을 늘려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원금의 구체적 규모, 시기, 재원, 절차 등에 관한 논의가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앞으로 여·야·정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방역지원금’을 새로 들고나온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진 걸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한국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6~7일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 대상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하자는 주장에 대한 생각’을 질문한 결과 추가 지급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답변자의 절반(47.7%)에 달했다.

지원금을 추가로 주되 취약계층에 선별 지급하자는 의견은 29.6%였다. 전체 답변자의 77.3%가 사실상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전 국민 대상 추가 지급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22.0%에 그쳤다. 같은 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5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에 조사한 결과 60.1%가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급하지 말아야한다”고 답했다.

여당이 재난지원금을 방역지원금으로 이름을 바꿔 강행하는 배경에는 내년 선거와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대선후보인 이 후보가 사실상 전 국민 지원금을 대선 공약으로 띄운 만큼, 지도부가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1인당 30만~50만원 수준으로 이재명표 재난지원금을 실행하려면 지난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총인구(5166만2290명)를 기준으로 지급액만 단순 추산해 봐도 15조5000억원에서 25조8000억원에 이른다. 가구당 40만~100만원이었던 1차 재난지원금(14조3000억원), 소득 상위 88%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급된 5차 재난지원금(10조4000억원)을 뛰어넘는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2조4000억원 규모를 세계잉여금으로 채운다 해도 나랏빚을 13조~22조원이나 내야 한다는 얘기다.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까지 추가 세수를 명확하게 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 의장은 “(10조~15조원은) 추정치이고 아무도 공식 발표한 적이 없다”며 “불확실한 범주이기 때문에 추가 세수에 대해선 더 명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가 세수 규모에 따라서 본예산과 추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지출 증가율 2배 껑충... 문 정부, 출범 후 나라빚 66% 증가

재난지원금 외에 손실보상 대상 확대, 지역화폐 예산 증액 등 이 후보의 요구를 반영하려면 예산안을 뜯어 고쳐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박 의장은 “이 후보가 얘기한 손실보상 10만원 제한도 검토해서 두껍게 보완하기로 합의했다”며 “3분기를 정산해보면 (증액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604조4000억원에 달했던 내년도 ‘슈퍼 예산’은 650조원대로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럴 경우, 내년 예산의 총지율 증가율은 당초 8.3%에서 ‘16.4%’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8월 내년도 예산을 올해 본예산(558조원)보다 8.3% 늘린 604조4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총지출 증가율은 8.3%로, 총수입 증가율 6.7%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임기 마지막 해까지 ‘확장재정’을 정책을 지속했다. 이에 따라 적자국채 77조6000억원을 포함해 늘어나는 빚은 112조3000억원이다. 이로 인해 내년 말 국가채무는 1068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만약 재난지원금 지급에 25조원이 투입된다고 하면, 약 23조원이 빚으로 남게 된다. 여기서 국채 발행을 줄이고 추가세수로 지급을 한다하더라도 재정 악화는 불가피하다. 특히 지역화폐 예산 추가, 손실보상 금액까지 추가될 경우, 국가채무도 40조원 이상이 증가하면서 11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본예산은 400조5000억원 규모였지만, 불과 4년 만에 51% 늘어난 604조400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내년 예산이 650조원 규모로 증가할 경우 문 정부 예산 증가율은 62.5% 달한다.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 수준이었지만, 1100조원에 근접할 경우, 4년 만에 나라빚이 66.6%(440조원)이나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채무율도 덩달아 증가한다.

◇홍남기, 소신 지킬까... 후보가 현 정권에 재난지원금 요구

기재부가 제출한 내년도 본예산에 6차 재난지원금 배정 예산은 ‘0원’이다. 정부가 짠 예산만으로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55조6000억원 빚(통합재정수지 적자)을 져야 해서 여유 재원도 없다.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공약을 실현하려면 내년도 본예산 지출액을 대규모로 증액하거나 해를 넘겨 내년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새로 편성하는 방법 뿐이다. 늘어나는 지출 예산을 충당하려면 빚잔치를 더 해야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법상 국회는 예산 삭감 권한을 갖고 있지만, 편성된 예산안 규모를 증액하는 것은 기재부 동의가 있어야 한다. 앞서 홍 부총리는 여권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에 대해 8일 “여건상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있을 수도 없을 것 같고 여러가지로 어려울 것 같다”고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혔다.

기재부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홍 부총리가 소신을 지키고 정치권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홍 부총리는 그간 경제정책을 두고 여러차례 자신의 소신 발언을 드러내며 여당과 충돌했지만, 결국에는 여당의 뜻대로 정책이 펼쳐졌다. 특히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여러차례 부딪혔는데, 작년 1차 재난지원금 당시 홍 부총리는 ‘하위 70% 지급안’을 주장했고, 2차 재난지원금 때는 ‘100% 적자국채 발행’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결국 여당의 입장을 수용했다.

문제는 10조원 규모의 세수가 추가로 들어와도, 지방교부세 등을 감안하면 정작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류성걸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이 후보가 말한 1인당 30만~50만원을 지급하면 (소요 재원이) 15조~25조원이 되는데, 초과세수가 10조원이라고 해도 그 중 지방교부세, 국채 상환을 제외하면 3조원밖에 안 남는다”며 “정부여당이 만약 올해 추경을 한다해도 15조~25조원이 필요한데 3조원 밖에 안 남으니 12조~22조원을 국채 발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대선후보가 임기가 남은 현 정부를 압박해 당장 정책을 추진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권 대선 주자였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현금을 살포하는 후안무치한 매표 행위”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선거철이 되면 돈을 뿌려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매표 행위가 있었는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가 정당을 앞세워 지원금을 뿌리는 것은 사실상 같은 행위”라며 “당선 뒤에 예산 협의를 통해 재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후보가 현 정부에 돈을 풀라는 것도 이례적인 상황이다. 코로나 시국에 한국 경제가 재정지출을 통해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재정 수준 때문이다. 지금은 기존에 나간 지출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