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과 중국의 전력난 등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대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이른 테이퍼링과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더해 미국 부채 한도 협상과 중국 헝다 등 부동산 기업의 채무불이행 등 미중발 리스크에 수출입 물류대란 등 글로벌 복합 악재가 국내 경기에 충격을 주고 있다.

경제수장들이 최근 내놓는 메시지도 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외부 복합 악재로 각종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일컫는 ‘퍼펙트 스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계부채 우려가 큰 상황에서 금융 시장에서 촉발된 위기가 실물 경제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취임사에서 “여러 주변에 환경적 요인들이 태풍의 힘을 배가해 굉장히 큰 위력을 가진 태풍으로(변해) 국민경제와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자신하고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 4% 달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내수 회복이 더딘 가운데 공급망 쇼크와 수출입 대란 등으로 호조를 보이던 수출에도 악조건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는 침체된 상태에서 물가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YONHAP PHOTO-2088> 코스피 상승 출발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8일 코스피가 상승 출발했다. 지수는 전날보다 18.36포인트(0.62%) 오른 2,977.82에 출발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2021.10.8 uwg806@yna.co.kr/2021-10-08 09:26:13/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공급망 쇼크에 美中 악재…글로벌 복합위기

11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1.7%, 2분기 0.8%씩 성장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분기는 급격히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0% 안팎이거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점쳐진다. GDP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전(全)산업생산이 지난 7월 -0.6%, 8월 -0.2%로 두 달연속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특히 8월에는 소비와 투자도 감소해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7,8월 마이너스였던 생산이 9월 급반등하지 않는다면 3분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경기 회복세가 급속히 식어버린 이유는 글로벌 경기 회복 흐름이 주춤해 진데 따른 것이다. 우선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과 중국의 전력난 등에 전 세계 공급망에 충격이 가해진 여파가 전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의 전력난은 원자재 및 필수부품 가격 인상을 초래하고 있고, 작년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도 델타 변이 확산으로 내년 말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용 상승으로 각종 공산품 가격이 상승하는 등 공급망 붕괴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인플레를 자극할 우려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플레 우려로 미 연준(fed)이 예상보다 빨리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주요 리스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치솟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11월 인도분 선물은 전날 대비 1.31달러(1.7%) 상승한 배럴당 78.9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배럴당 80달러 이상이었던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석탄·천연가스 값도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부채한도 협상이 올해 12월까지 유예되면서 일단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놓이는 상황은 피하게 됐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해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발 부채 위기도 변수 중 하나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 그룹에 이어 또 다른 부동산 업체 판타시아도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을 놓고 민주·공화당이 대립하는 가운데 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에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 /AP 연합뉴스

◇국내 경기도 주춤…생산·소비·투자 부진한데 물가만 치솟아

글로벌 악재가 연이어 들이닥치자 국내 주가도 곤두박질 쳤다. 코스피는 지난 5일 6개월여 만에 3000선 아래로 떨어지고 이후 내리 하락하며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기로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공급망 쇼크와 테이퍼링 등 이슈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국내 코로나 4차 대유행이 백신 접종 확대에도 불구하고 장기화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같이 국내외적인 악재로 인해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생산 부진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보다 0.3포인트(p)나 떨어졌다. 2개월 연속 하락세다. . 이같은 추세로는 정부가 당초 전망했던 4.2% 성장률 달성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7일 발표한 ‘경제동향 10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면서비스업의 부진으로 회복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되며 하방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 경기 부진이 완화됐다고 긍정적인 진단을 내놓은 지 6개월만에 ‘불확실성 확대’, ‘대면서비스업 부진’, ‘하방 위험 증대’ 등 부정적 표현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반면 원자재값 상승 등 여파로 소비자물가는 천정부지다. 계란이나 우유 등의 서민물가품목이 고공행진 중인데다 당장 이달부터 인상된 전기요금으로 인해 추가적인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5% 치솟았고, 분기 기준으로 보면 지난 3분기 물가는 2.6% 올라 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의 올해 목표였던 ‘1.8% 물가상승’은 가망이 없어졌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10월 물가가 (9월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압력이 커지면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경기회복에도 지장이 생긴다. 하지만 인플레 우려가 커지면서 한은의 금리인상 등 긴축정책 가속화도 불가피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와 롱비치 항구에서 물류가 적체된 영향으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컨테이너선들이 인근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서부의 관문'인 이들 두 항구에는 컨테이너 수만 개가 쌓여있는 상태다./연합뉴스

◇수출 타격입으면 4% 성장도 위태

그나마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9월 수출은 558억3000만 달러로 월 기준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달성했다. 누적 기준으로도 역대 최고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이 호조를 보이며 실적을 이끌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 전력난에 따른 공급망 붕괴, 원자재 가격 상승, 수출입 물류대란 등의 글로벌 리스크로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 붕괴 현상은 벌써 우리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등으로 9월 판매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4∼22% 줄었다. 수출에 차질이 지속될 경우 연간 4%대 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선 기업들의 심리가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 기대감이 현저히 꺾인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2300여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4분기 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직전 분기의 103보다 12p 하락한 91로 집계됐다. BSI가 기준치인 100보다 높으면 긍정적으로 경기를 전망한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 경기 전망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기구를 비롯해 정부, 한국은행 모두 ‘4%대 성장’을 전망하고 있지만, 응답기업의 83.8%는 4%대 성장이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반기 국내외 위험요인이 매우 큰 상황이다. 국내 물가 압력이 상당히 거세지고 있어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고 있는데다 가계대출 확대세에 따른 위험요소가 증대되고 있고, 해외도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앞두고 있다. 기업과 개인 등 개별 경제주체들의 위험관리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라면서 “글로벌 공급망 쇼크 역시 비용 상승에 따라 물가 압력으로 작용하고, 이에 따라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경기 하방압력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