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제곡물가격이 치솟으면서 하반기 장바구니 물가도 급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인도발(發)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농산물 가격까지 오르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세 둔화’와 ‘애그플레이션(농업+인플레이션)’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올 상반기에는 공급망 병목현상이 인플레이션(inflation·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 요인이었다면, 하반기에는 치솟는 농산물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옥수수, 대두 등 곡물가격 상승에 힘입어 국제식품 가격이 올해 25%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 곡물가격 올 상반기 50% 뛰어…“하반기 소비자 물가 반영”
국제금융센터는 21일 발간한 ‘7월 국제금융 인사이트’에서 “애그플레이션이 10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올해 상반기 중 오른 곡물가격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맥을 못추던 곡물가격은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상승 전환하면서 식탁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올 1~6월 중 옥수수·소맥·대두 등 3대 국제곡물가격은 최대 50% 급등했다. 국제곡물가격 상승분이 통상 4~7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소비자 물가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곡물 가격이 평균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0.39% 오른다고 분석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옥수수 선물가격은 지난 16일(현지시각) 기준 부셸당 7.73달러를 기록, 지난해 8월초 저점(3.08달러) 대비 151% 뛰었다. 이는 201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대두와 소맥가격도 같은 기간 91%, 63%씩 올랐다.
곡물은 물론 육류와 유제품, 원당 등을 포함하는 UN 농업식량기구(FAO)의 실질 식품가격지수도 지난해 5월 92.0에서 올해 5월 126.4로 크게 올랐다. 12개월 연속 오르며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국제 농산물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이 상당 수준 진행되고 있다고 국제금융센터는 평가했다.
곡물가격 상승은 가뭄·폭우 등 기상이변으로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 주요 농산물 생산국의 수확이 부진한 가운데 코로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세계 주요국의 곡물 소비는 늘어난 영향이 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곡물·농산물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올해 5월 옥수수 수입량은 316만톤으로, 1년 전보다 395% 폭증했다. IMF는 “먹거리는 물론 사료용 곡물수요도 늘면서 식료품 생산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면서 바이오연료 수요가 늘어난 점도 곡물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에탄올의 경우 옥수수와 사탕수수가 주원료이고, 바이오디젤은 대두로 만든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바이오연료의 활성화는 곡물 수급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의 경우 올해와 지난해 옥수수 생산량 중 에탄올 원료로 사용된 비중이 36%에 달한다”고 말했다.
◇ 밥상물가 뛰면 가계부담·추가 물가상승 유발 우려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농축수산물 물가가 급등하면서 장바구니 물가도 비상이 걸렸는데, 최근 곡물가격 상승세를 감안하면 이런 흐름이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6월 농축수산물 물가지수는 전년 누계 대비 12.6% 치솟아 2011년 이후 10년 만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장에서 애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유는 농산물 물가가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곡물가격이 올라 달걀, 파, 라면, 우유 등의 가격이 뛰어 장바구니 물가와 외식 물가가 비싸지면 가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기대 인플레이션도 높아져 추가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자기 예언적인 특성이 있어 시장에서 예의주시하는 지표다.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을 예상하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고용주나 기업이 임금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게 되면 소비자 물가도 추가 상승하는 구조다. 곡물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산업의 경우 생산비 부담이 커지면서 전반적인 수익성이 나빠질 우려도 커진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곡물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인 농업기상여건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렵다”며 “델타변이의 확산으로 경제 재봉쇄 논의가 나오는 상황에서 애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가뜩이나 퍽퍽한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계층간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상여건 악화로 곡물생산이 타격을 입을 경우 생산국들은 수출을 제한하는 등 식량자원에 대한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어려운 우리나라는 식량파동(Food Crisis)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