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압력이 커진 상태에서 확장적 재정지출은 물가상승에 기름을 부어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습니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대학 웰스매니지먼트 프로그램 지도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담은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미칠 영향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지출이 증가하면 물가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므로, 지출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때 중앙은행은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확실히 잡고, 정부는 감세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돕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R의 공포(경기침체에 대한 공포)? V의 공포(통화 유통속도의 공포)!’라는 게시글로 경제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통화의 유통속도 개념을 소개하며 현재 물가지표에 집 값 등 자산시장의 변동성을 담아야 정확한 경기 진단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부의 직접 재정투입으로 소득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돈들이 자산시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로 인해 통화 유통속도가 반등해 물가 상승 압력이 시작됐다는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현재 빨라지고 있는 한국의 인플레이션 시계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각이었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대 교수./본인 제공

조선비즈는 27일 미국 체류 중인 김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미국은 대부분 코로나19 위기는 거의 끝났다고 여기는 분위기”라며 “6월 초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강의를 진행했고, 학생들도 생기를 되찾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국 현지 분위기는 어떠한가.

“현재 미국은 대부분 코로나19 위기가 거의 끝났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각종 변종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6월 초 진행된 경영학박사과정 세미나에서 학생들과 함께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강의를 진행했다. 학생들도 생기를 되찾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경제에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칠 영향은 거의 끝났다고 보는 건지, 아니면 잔존 위기가 남아있다고 보나.

“코로나 팬데믹이 향후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에 머무르던 부모들이 대면 수업이 재개되면 가을에는 빠르게 직장으로 복귀할 것이다. 9월에는 600달러 규모로 실업자에 지급되던 연방정부 지원금도 끊기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산업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일손 부족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대 초반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나, 수출 주도의 성장률 반등이 시작되고 있다. 재정 지원이 촉발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자산시장이 부풀어오르자 한은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최대 35조원 규모의 추경을 검토 중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통화 유통속도가 떨어지며 물가 공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세계 경제가 물가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 모두 경기침체가 단기간에 극심하게 나타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두 위기의 차이점에는 ‘V의 공포’가 있다고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재 코로나 경제위기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나.

“자산시장의 버블과 심각한 인플레이션. 이번 코로나 위기 때에는 금융위기 당시의 기억에서 교훈을 얻어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 모두 직접 현금을 가계와 기업들에 꽂아 넣었다. 두 정부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5조1000억달러를 가계와 기업에 직접 주입했다. 금융위기 때는 연준에 채권을 팔고 지급받은 현금을 은행들이 연준에 있는 지불준비금 계좌에 예치하고 대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연준과 은행 사이에서만 돌고 돌았다.

정부가 꽂아넣은 돈이 작년 상반기에 폭락했던 주식시장으로 대거 몰려갔다. 그럼에도 연준은 꾸준히 한달에 1200억달러씩 채권을 사들이며 유동성 주입을 멈추지 않았다. 원유 등 원자재 상품시장,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부동산까지 전방위적으로 돈이 흘러들어갔다. 통화 유통속도에 대한 반등 압력이 강하게 나타났다. 자산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와있다.”

미국 M2 통화량 추이 (소스 - 연방준비제도이사회)./김성재 교수 제공

-추경이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플레이션이 압력이 커진 상태에서 확장적 재정지출은 물가상승에 기름을 부어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대체로 경기가 부진에서 턴어라운드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때에는 중앙은행은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확실히 잡고 정부는 감세로 일자리 창출을 돕고 실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늘어난 정부 지출이 갑자기 줄어들 경우 발생하는 재정절벽의 부작용을 우려해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건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부지출이 증가하면 물가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추경을 어떤 방식으로 편성해야 합리적인 정책 대응일까.

“한은이 물가를 우려해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정부는 물가 부작용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경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 규모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잡고 지원대상은 코로나로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와 용역에 대한 실제 소비가 줄어 고통받는 저소득층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부진했던 재화와 용역에 대한 소비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가에 대한 부담이 적을 수 있다.

미국처럼 실소득세액공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도입해 세액공제로 저소득층에 현금이 자동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 저소득층 배려를 위한 제도이므로 중산층 이상에는 혜택이 없다.”

-코로나19가 확실히 잡히지 않아, 대면서비스를 포함한 민간소비가 다소 부진하다.

“백신접종 확산으로 민간소비도 회복세로 가고 있다. 한국에서 민간 소비가 부진을 보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주택가격과 전월세의 급등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주택가격과 전월세의 급등이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클 것이다. 주택가격의 급등을 막기 위해 부과한 종부세 인상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속도를 늦추려면 재정 지출을 늘려서라도 성장률을 확실히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상황이 과연 잠재성장률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야하는 상황인지 의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민간투자와 수출이 견조하고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는 GDP 대비 세계 최상위권이다. 한은이 예상하는 금년 GDP 성장률은 4%에 달한다. 이는 명백하게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치다. 즉, 경제 내 총수요가 높아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진정 잠재성장률을 걱정하고 있다면 가계지원금 같은 단기적 소비 진작을 위한 예산을 편성할 것이 아니라 출산·육아 지원, 주택 부족 문제 해결 등 장기적으로 노동 인구를 늘리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창업, R&D, 교육, 해외 투자 유치 등으로 민간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재정은 확장적인 기조를 유지하는데, 금리는 반대로 긴축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같이 가야 하는가 아닌가는 경기사이클과 물가상태를 반영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부동산과 자산시장에서 낀 거품을 완만히 제거하기 위해 하반기에 한은이 금리인상을 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만약 향후 경기가 강하게 회복될 것이 확실하다면 재정확대는 인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다.

재정확장에는 감세와 정부지출증가 두가지가 사용될 수 있다. 보다 부작용이 적은 것은 정부 지출 확대보다는 감세가 더 효과적이다. 1970년대 장기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안정속에 장기호황을 이끌었던 레이거노믹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감세정책과 공급중시 경제 정책을 핵심으로 했다.”

-1970년대식 인플레가 재현될 것으로 보나.

“현재 미국의 여건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이 재현될 당시와 유사한 점이 많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돼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나타났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추가 압력을 가할지는 2022년 중간선거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약 미국 민주당이 승리해 의회를 장악하면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으로 갈 수도 있다.”

☞김성재 교수는

김 교수는 1994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아세아종합금융, 한스종합금융,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권에서 외환, 주식시장 관련 실무 경험을 쌓았다. 아세아종합금융에서는 외환딜러, 외환선물옵션거래·환위험포지션을 선물 블록딜로 커버하는 거래 구조를 개발했다. 한스종합금융에서는 주식·채권펀드 매니저와 주가지수·선물옵션 거래를 담당했다. 예금보험공사 보험관리부에서는 예금보험금 지급소송, 신협 예금보험금 지급, 신협 구조조정 등을 담당했고, 공사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2005년부터 미국 코넬대에서 응용경제경영학 석사를 하며 ‘연준 통화 정책에 대한 주가 반응'을 연구했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외환 위험 관리에 대한 에세이'라는 논문을 썼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가드너웹대학은 1905년에 설립된 사립대학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보일링스프링스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대학의 온라인 MBA 과정은 비즈니스 MBA가 선정한 ’2012년 전세계 상위 50개 온라인 MBA 프로그램' 순위에서 9위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