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16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예정보다 1년 이상 앞당겨진 2023년으로 제시된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금리상승 후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6일 하루동안 전일 대비 7bp(1bp=0.01%p) 상승한 1.5690%에서 거래됐다. 이후 17일 발표된 고용지표 부진으로 하루만에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1.50%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10년만기 국채 금리도 17일 2.079%까지 올랐다. 한국은행의 하반기 금리인상 시사 등으로 지난 2일 2.202%까지 올랐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후 하락세를 보였지만 FOMC를 기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달라진 태도를 주목하고 있다. 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고, 지속적일 수 있다”고 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발언이 금리상승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한 파월 의장의 달라진 입장이 글로벌 채권시장을 출렁이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미국 고용지표 방향성에 따라 일부 등락이 있겠지만,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금리인상으로 방향성이 맞춰진 만큼. 앞으로 미국 등 주요국 장기 채권 금리가 상승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회복기에 장기 금리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지만, 안전자산인 미 국채 금리 상승은 신흥국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코로나 19 이후 채무상환 능력 저하, 재정건전성 악화 등에 따른 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 일부 취약 신흥국의 외화자금 조달 요건이 악화된 가운데, 국내외 장기금리 상승은 신흥국의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인플레 우려 커지자…올 들어 장기 국채금리 일제히 상승
올해 들어 주요국 장기 국채 금리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대표적이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해 말 0.9%선에서 등락하다가 올해 3~4월 중 1.7%선까지 큰 폭 올랐다. 최근 1.48%로 조정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 15~16일(현지시각) 이틀간 열린 FOMC 회의를 계기로 연준의 ‘긴축 시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에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장기 국채 금리를 끌어올린 요인으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그간 주요국이 코로나 충격에 대응해 국채 발행을 대거 늘리면서 시장에 풀린 채권 물량이 급증한 현상이 대표적이다. 통상 정부가 국채 발행량(채권 공급)이 늘면 국채 금리는 상승한다. 국채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인수해야 할 채권 물량이 늘어나 채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인플레이션 우려도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국채는 원금과 이자가 고정되어 있어 물가 상승이 예상되면 가격이 하락(채권 금리 상승)한다. 물가가 상승하면 미래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원리에 따른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미 물가상승률이 예상을 웃도는 4.2%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당시 1.5%대에서 움직이던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곧바로 1.7%선까지 치솟았다.
그래서 미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대표적인 ‘긴축’ 신호로 해석된다. 중앙은행은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금리를 인상하고 긴축을 통해 그동안 시중에 풀어둔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면 기존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수익률)는 상승한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의 향방을 통해 경제를 보는 시장의 기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셈인데, 최근의 상승 흐름은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전망을 반영한 측면이 더 크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와 연동해 움직이는 우리나라 장기 국채 금리도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7월 말 1.28%로 저점을 찍은 뒤 계속 올랐다. 올해 들어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3월 이후 2%를 웃도는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기 금리도 오르면서 장단기 금리차이가 축소되는 커브 플래트닝(curve flattening) 현상도 나타났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7일 연 1.327%에 마감했다. 연초 0.954%와 비교하면 0.4%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단기 국고채 금리도 뛴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의 국내 장기 금리 상승에는 국내외 거시경제 여건 개선, 통화정책 기대 변화, 국채 발행물량 증가, 주요국 국채금리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국채 금리 상승세 연말까지 지속”
시장에서는 최근의 미 장기 국채 금리 상승폭이 지난 2013년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발작) 당시와 비슷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3년 5월 테이퍼링을 시사하자 신흥국을 중심으로 주식, 채권, 통화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긴축 발작'이 일어났다. 연준은 이로부터 8개월 뒤인 2014년 1월 테이퍼링을 추진했고, 2015년 1월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당시 1.8%선에서 움직이던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준의 테이퍼링 언급에 곧바로 2%를 넘어섰고 그해 9월에는 2.8%까지 치솟았다. 연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까지 상승한 국채 금리는 이듬해 1월 연준이 테이퍼링에 돌입하자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시장에서 연준이 조만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미리 움직이면서 채권 금리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는 경제 상황이 2013년과 다르지만, 장기 국채 금리 흐름만 놓고 보면 올해도 연준이 테이퍼링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 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해외 투자은행(IB)은 연준이 이르면 오는 8월 잭슨홀 미팅이나 9월 FOMC 정례회의, 늦어도 12월에는 테이러핑을 선언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물가상승률이 연말까지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데, 이 경우 장기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연준이 6월 FOMC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관련 위험을 인식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한 점이 이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당초 예상보다 더 높고 지속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미 연준의 조기 테이퍼링 기대감이 장기 금리에 선반영됐기 때문에 상승폭이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가 지난해 저점(0.5%) 대비 올 들어 3월까지 120bp 정도 올랐는데, 이는 과거 테이퍼 탠트럼 당시의 상승폭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향후 FOMC 회의가 다가올 때마다 경계감으로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상승할 수 있지만 1.7%를 상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연내 고점을 찍을 것”이라며 “테이퍼링이 발표되면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장기 금리도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추경에 국채 발행량 급증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견인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정부의 국채 발행이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봉쇄에 따른 실물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국채 발행이 크게 늘어났고, 채권시장의 수급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지난해부터 코로나 위기 대응을 목표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고채 발행이 급증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국고채 발행이 큰 폭 증가하면서 올해 말 기준 국고채 잔액은 85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2016~2019년 사이 100조원 수준이었던 국고채 발행규모는 지난해 지난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174조5000원으로 전년 대비 71.6% 급증했다. 올해는 186조원 발행이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1차 추경 예산을 15조원 규모로 편성했는데, 이 가운데 9조9000억원을 국채를 발행해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국고채 발행이 크게 늘면서 수급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고채 수급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금리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향후 추경편성으로 국고채 발행물량이 늘어날 경우 금리의 상방 위험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美 테이퍼링 앞두고 채권시장 변동성 확대 전망
연준이 연내 테이퍼링에 돌입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우리나라 채권시장도 단기물을 중심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채권금리는 상승세다. 국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0일 1.282%로 0.15%p 치솟았고 15일에도 1.3070%에 마감하면서 연고점을 경신했다.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2.91%(신규 취급액 기준)로 지난해 1월(2.95%) 이후 1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문제는 금리가 오르면 그간 초저금리에 대출을 받아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에 투자해온 사람들이 내야 하는 이자가 늘면서 가계부담이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올해 1분기 말 사상 최대인 1765조원을 기록했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출, 주식시장 활황에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빚투(빚내서 투자)’가 겹친 영향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단기국채 금리가 미국의 적정 금리 인상 폭만큼 오르면 금융 부채가 있는 가구당 이자부담액이 연간 최대 250만원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이 신흥국발(發)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장기금리가 상승할 경우, 신용스프레드 등의 경로를 통해 한국의 장기금리, 원·달러 환율, 위험프리미엄 등 국내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요인들이 상승하고, 국내총생산과 투자 그리고 소비 등 주요 거시 실물 변수까지도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미국 장기금리 상승은 외국인 투자와 같은 해외자본이 크게 유출되면서 증시 등 국내 유가증권 및 자산가격 변동에도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따라서 현재의 미국 장기금리 상승세가 우리 경제의 경기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파급할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