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 가격과 국제유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대비 2.6% 올라 지난 2012년 4월 이후 9년 2개월만에 최대 상승했다. 파값은 이번달에도 130%가 뛰었고, 달걀도 45% 올랐다. 정부가 경계하던 ‘2분기 물가 튀어오름'이 현실화된 것이다.

앞서 정부가 달걀 수입 확대 등의 물가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놓으면서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호언장담했으나 실상은 도통 효과가 없던 모습이다. 파, 계란값은 반년 가까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공업 제품 가격도 오름세가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가격도 상승세로 돌아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요회복이 반영되는 모습이다. 무상교육 등의 정책요인이 유일한 하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그간 농축수산물 수급 등 그나마 관리 가능한 내부요인 마저 통제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하반기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본격화되고 국제유가 상승세가 계속될 경우 최근의 물가 오름세가 정부가 호언장담하는 대로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효율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인플레이션에 대처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YONHAP PHOTO-3135> 농축산물 가격 강세, 정부 대책 마련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8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대파를 판매하고 있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달걀, 대파 등 평년보다 높은 가격이 예상되는 농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농축산물 수급 대책반' 회의를 개최했다. 2021.5.18 xyz@yna.co.kr/2021-05-18 15:00:02/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소비자물가 9년 1개월만 최대 상승…정부 물가 대책 ‘실패’ ?

통계청이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2.6% 상승했다. 농축수산물과 공업제품, 서비스가 상승한 데 따른 영향이다. 이는 지난 2012년 4월(2.6%) 이후 9년 1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락했던 지난해의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는 관계가 없는 농축수산물 가격 오름세는 작년 여름부터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기상이변이나 조류독감(AI)등의 영향이다. 지난달 파(130.5%), 달걀(45.4%), 마늘(53.0%), 돼지고기(6.8%), 국산쇠고기(9.4%) 모두 큰 폭 오름세를 보였다. 통계청 관계자는 “햇상품 출고로 농축수산물 가격 오름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체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파나 계란 등 품목에 대한 물가 대책을 여러번 내놨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던 모습이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공업제품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휘발유(23.0%), 경유(25.7%), 자동차용LPG(24.5%) 모두 두 자릿수 오름세를 보였다. 다만 추후 유가 상승폭 확대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 관측이다.

서비스물가의 경우 전년동월대비 1.5% 올랐는데, 여기에는 개인서비스 물가가 전년동월대비 2.5% 오른 것이 영향을 미쳤다. 개인서비스는 2019년 2월(2.5%)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집세도 1.3% 상승했다. 외식물가는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재료비 인상 영향으로 2019년 3월(2.3%) 이후 최대로 올랐고, 외식외 물가는 공통주택관리비와 보험서비스료가 오르면서 2017년 10월(2.9%)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YONHAP PHOTO-1629> 물가관계차관회의 주재하는 이억원 1차관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4차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제20차 정책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1.6.2 kimsdoo@yna.co.kr/2021-06-02 08:07:2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하반기 인플레 우려…수요 회복 본격 반영

물가가 오름세를 지속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지만 정부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국제유가 오름폭이 확대되지 않고, 햇상품 등 출고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안정화되면서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달 물가가 2%넘게 오른 것은 기저효과 영향이 가장 크고, 유가 전망 전문기관의 보고서 등을 참조하면 향후 국제유가 오름폭이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면서 “농축수산물의 경우 햇상품 출고로 가격 오름폭이 둔화되고 있어 하반기에는 물가가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는 수요 회복이 본격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다. 백신 접종 확대로 외출이나 여행 등의 활동이 자유로워지고, 보복소비 등이 분출할 경우 물가 상승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국제항공료(13.9%), 국내단체여행비(4.9%) 등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재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불안 요인도 지속될 전망이다.

유일한 물가 하방 요인이 일시적인 정책 요인인 점도 문제다. 공공서비스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7% 하락했는데, 무상교육으로 학교급식비(-100.0%), 고등학교납입금(-100.0%)이 크게 줄었다. 이같은 정책 요인을 제거하고 나면 물가가 당장이라도 2%대 후반으로 튀어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농축수산물 등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내부요인 마저도 제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파나 계란값 상승세가 지난해 말부터 반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수입확대나 관세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을 ‘기저효과' 탓으로 돌리는 안일한 태도가 아니라 하반기 물가 상승압력이 본격화 될 경우를 대비한 효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물가 안정대책 6월부터 시행

정부는 하반기 물가 위험 여건에 대해 인지하며 선제적인 물가 안정을 위해 6월부터 즉시 추진 가능한 과제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기상 이변, 원자재 병목현상, 백신 보급에 따른 소비 회복이 서비스 가격에 미치는 영향 등은 하반기 물가 여건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 중 일부가 현실화되는 경우 경제 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 경제 상황보다 더 높게 형성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우선 달걀 수입 물량을 다음 달 5000만개 이상으로 확대하고 다음 달 말 종료 예정이었던 달걀에 대한 긴급할당 관세지원조치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막걸리·누룽지 등을 위한 가공용 쌀 2만 톤을 추가 공급하고, 돼지고기는 6~9월 가격 상승에 대비하여 6월 중 할인해 판매한다.

또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대한 대응하기 위해 조달청이 보유한 비철금속 할인 방출 물량을 다음 달 2만9000톤으로 확대하고, 판매 할인율도 높이기로 했다. 기업이 외상으로 구매할 때 이자율을 내려주는 것도 검토한다. 서비스가격 상승에 대응해서 중소 가공식품과 외식업계의 원료 매입 자금 융자 지원 금리 0.2%p 인하하는 한편, 융자 규모 확대를 검토 중이다.또 농축산물 할인 쿠폰 사업을 하반기에도 차질없이 진행하고, 수산물 할인 행사도 하반기 중 5회 이상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