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종시 부처들 사이에서 ‘ESG 정책만들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이나 기관의 장기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환경, 사회, 윤리적 가치 등 비재무적 측면에서 측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하면서 금융시장과 기업 경영 등에서 ESG가 주목받으면서 관가에서도 ESG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8일 기획재정부 등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7월에 발표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에서 처음으로 기관들의 ESG 항목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ESG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공공기관 평가에 ▲안전 및 환경 ▲사회공헌활동 ▲상생협력 ▲일가정 양립 등 ESG 관련 항목을 추가했다. 공공기관은 다음달 말까지 관련 신설항목의 내용을 취합해,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에 입력을 해야 한다. 기재부는 평가와 검증을 거쳐 7월 중순에 공공기관 공시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임 이후 첫 업무로 파리 기후변화협약 복귀, 연방 시설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행정명령 17건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2분기 공시부터는 공공기관이 안전관리등급제에 맞춘 안전경영책임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또 녹색제품 구매 실적과 온실가스 감축 실적 등 환경 분야의 노력도 보고를 해야 한다. 현재 ‘자율 공시’중인 ‘봉사 실적’도 정식 공시항목으로 신설된다. 또 상생협력 분야에서는 ‘혁신조달’과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실적’을 추가하기로 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내용을 반영해, 공시항목에 ‘가족돌봄휴가'를 추가하고 ‘직장어린이집 지원'도 별도 공시항목으로 분리했다.

이러한 변화는 공공기관들에 즉각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 4월 중부, 남동, 남부발전 등 발전공기업들은 잇따라 ESG 경영 심의체계 구축, 종합추진계획 선포, 위원회 신설 등을 발표했다. 또 산림청은 산림분야의 ESG 실적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지표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또 산림청은 현대차, 한화, 포스코 등 기업 이에스지(ESG) 담당자,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김정애 기재부 경영관리과장은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분야에서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ESG 도입에 따른 경영 변화가 공공기관 전체로 확산 공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유익하고 적시성 있는 공공기관 정보가 더욱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시될 수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SG는 바이든노믹스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 달성, 2조 달러(약 2,200조원)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을 발표했고, 이는 ESG에 해당하는 정책이다. 글로벌 금융사와 기업들도 잇따라 ESG 상품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올해 1월 애플은 경영진의 보너스 결정에 ESG 경영 성과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 자산 규모가 약 7조8000억 달러인 전 세계 1위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투자 기업들에게 탄소 중립(Net Zero) 계획을 밝힐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삼성과 현대차·SK(034730)·LG(003550)·롯데·포스코·한화(000880)·GS(078930) 등 주요그룹 18개사도 ESG 경영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추대했다.

정부도 기재부를 중심으로 범부처 ESG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ESG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정부는 ESG 확산을 우리 경제가 친환경⋅포용⋅공정경제로 체질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 차관을 비롯해 기재부 장기전략국장, 산업부⋅환경부⋅중기부⋅금융위 담당자와 ESG 관련 기업⋅금융사⋅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이 차관은 “정부는 민간 주도의 ESG 생계 조성⋅확산을 목표로,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며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ESG에 대한 관심이 급증함에 따라 여러 기관에서 서로 다른 ESG 평가방식을 도입하면서 ESG 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ESG 지표만 600여개가 난립하면서, 이를 지키려는 기업 부담도 가중되는 상황이다. 또 각 부처마다 기업과 산하기관의 ESG 평가 방식도 달라, 표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공신력을 갖추지 못한 ESG 평가가 난립할 경우, 같은 기업이라도 평가기관에 따라 점수가 달라져,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해외 ESG 지표를 그대로 사용하면 한국의 경영 환경과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아 국내 기업이 역차별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외 지표의 경우 기업의 인종 다양성을 평가해 가점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ESG 평가의 표준화를 지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31일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ESG에 대해 “세계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한 길이며,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ESG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제도를 개선하고, ESG 표준 마련과 인센티브 제공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K(한국형)-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 초안을 공개했다.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올 하반기 중 공식 지표를 발표할 방침이다. 초안은 국내외 주요 13개 지표를 분석해 4개 분야(정보공시·환경·사회·지배구조)의 핵심 공통항목 61개를 도출했다. 산업부는 작년 4월부터 한국생산성본부, 전문가 등과 함께 산업발전법에 근거한 가이드라인 성격의 ESG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이번 초안에서 정보공시 분야는 ‘ESG 정보공개 주기’ ‘ESG 정보 대외공개 방식’ 등 5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환경 분야는 ‘재생에너지 사용량’ ‘온실가스 배출량 집약도’ 등 14개 문항, 사회 분야는 ‘정규직 비율’ ‘최근 3년간 산업재해율’ 등 총 22개 문항이다. 지배구조는 ‘이사회 내 여성 인력 수’ ‘내부비위 발생현황 및 공개 여부’ 등 20개 문항으로 이뤄졌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ESG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높은 관심, 관련 법률 제정 등을 고려했을 때 기업 경영과 투자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며 “다만 ESG가 우리 사회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상징적 활동보다는 ESG 평가 방식 개선 등 내실화를 고민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