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기자가 자주 받는 메일의 내용이다. 국내에서 암이나 희소질환 환자들이 신약의 등장으로 한 줄기 희망을 품는 건 잠깐이다. 한 달 약값이 수천만원으로, 고가이기 때문이다. 신약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앞선다.

환자들은 투병하면서 신약 혜택을 받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화 싸움도 해야 한다.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의 건강보험 급여를 촉구하는 국민 동의 청원은 두 차례나 진행됐다. 모두 청원 기준인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으나 지난해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됐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유방암 중에서도 예후가 나쁜 아형에 속한다. 40세 이하 젊은 여성이 주로 걸리며, 환자 중엔 어린 자녀를 둔 엄마도 많다.

폰 히펠 린다우 증후군 환자들도 신약 급여화를 호소하고 있다. 뇌나 신장 등에 악성종양을 유발하는 이 병은 종양 억제 유전자 이상으로 약 4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한다. ‘웰리렉’이란 신약이 나오면서 환자들이 새 희망을 발견했지만, 한 달 약값이 2200만원에 달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지난해 6월 국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달라는 국민 청원을 올렸다. 하지만 작년 내내 국회서 논의되지 못했고, 기한이 연장돼 논의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의약품 관련 청원만 8건에 달했다. 국회법상 5만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90일 이내에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60일 연장할 수 있고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한 번 더 기한 없이 연장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호소하고 국민이 힘을 보탠 청원들은 논의 한 번 못하고 폐기됐다. 빨리 논의하자는 언급만 한 번 있었을 뿐이다. 그 사이 신약을 못 쓰고 상태가 악화하거나, 세상을 뜬 환자들도 있었다.

국회에는 표류 중인 국민 청원과 법안들이 쌓여 있다. 자원이 한정적인 만큼 청원을 모두 듣고 법안을 다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환자 청원이라도 무조건 먼저 봐야 할 근거도 없다. 하지만 왜 논의하지 않았는지 답은 해야 한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로 엄격하고 투명하게 우선순위를 매기고 이를 국민에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생 우선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