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 이후 10년간 사법 리스크에 마비됐던 삼성 컨트롤타워 재건 계획이 또 다시 검찰에 발목이 잡혔다. 1심과 2심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이 무리하게 상고를 결정하면서 이재용 회장과 삼성 경영진을 괴롭혀왔던 법정 공방이 최소 1년, 길면 3~4년 더 지속될 듯하다.

사실관계와 사법 정의는 사라지고 고집과 오기만 남은 이 지리멸렬한 공방을 지켜보는 여론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어떤 싸움을 해온 것인가. 재계, 학계, 법조계, 정치권에서조차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검찰의 발목잡기는 이 회장이 얼마나 집요한 사법 권력에 시달려왔는지를 역으로 드러낸다. 지금 검찰의 모습이 사법 정의 실현보다는 체면 차리기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의 오류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여론에 등을 돌린 채 이를 꽉 문 검찰의 모습은 분열과 갈등을 먹고 사는 전문 시위꾼들의 모습을 연상한다. 노동계의 소위 직업적 ‘싸움꾼’들의 궁극적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확대와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상고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삼성에 대한 ‘사보타주(sabotage)’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보타주는 나막신을 뜻하는 프랑스어 사보(sabot)에서 유래한 단어로, 중세 유럽의 농민들이 영주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해서 수확물을 짓밟은 데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더 넓은 의미로 기업 운영에 대한 고의적인 방해행위나 와해공작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산업 스파이 활동을 지칭하기도 한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대기업의 경영자를 정치권과 검찰이 이토록 오랜 기간 적대적으로 괴롭힌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미국의 경우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법적 문제에 휘말려도 대부분 1심에서 결론이 나고 검찰 측 상고를 제한해 매번 3심까지 가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업 총수가 2주에 한 번씩 법원에 출석하면서 어떻게 기업을 경영하는가. 그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처럼 기괴한 일이 너무나 당연스럽게 벌어지는 건 오랜 기간 정치권, 법조계에 깔려있는 반기업 정서, 특히 반삼성 정서 때문이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국회의원과 검사의 눈에는 그저 때리고, 혼내 실적을 내야 하는 피식자에 불과하다. 정계 관계자는 “진보 진영의 초선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들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삼성 물어뜯기에 나서는 것은 이미 오래된 관행”이라고 했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는 한술 더 떠 행정부마저 삼성전자에 대한 사보타주를 남발했다. 지난 2018년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피해 입증을 이유로 삼성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생산 기술 노하우가 담긴 공장 설비 배치도, 장비, 제조에 사용되는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경쟁국, 경쟁업체에 수십 년간 누적된 수백조원의 기술 가치를 거저 바치는 셈이다.

그동안 반삼성 노선을 취해왔던 정계 인사들마저도 검찰의 상고가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원 시절) 삼성을 잡던 하태경이 태어나 처음 친삼성 발언을 하게 됐다”면서 “삼성은 단지 일개 기업이 아니다. 삼성 위기가 심화되면 경제 불안정성도 커진다. 그래서 검찰 상고는 경제 폭거”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야당은 중국계 산업 스파이에 대한 간첩죄, 기술 유출과 관련한 강력한 처벌 입법 요구를 외면하는 동시에 경쟁국 대비 족쇄로 불리는 반도체 연구직 주 52시간 예외 적용 주장에 귀를 닫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시장이 대변혁기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 일본, 중국은 자국 기업 육성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고루하고 습관화된 반기업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이미 휘청거리는 배에 바닷물을 들이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