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 20일(현지 시각) 출범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큰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의 부흥과 최신식 해군 함정 확보를 위해 동맹국과 손을 잡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또 원유와 가스 시추를 확대하고 수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향후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운반선 등의 수요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조선업은 2000년대 후반 이후 10년여에 걸쳐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났다. 수년간 세계 1위의 수주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을 평정했지만, 2008년 금융 위기로 오랜 기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선박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이 와중에 중국 조선사들이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값 싼 선박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선박 생산량 1위를 내주기도 했다.

극심한 불황에서 국내 조선사들은 기술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비용 절감과 조직 변화를 통해 체질을 개선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2016년 R&D에 2000억원을 썼지만, 2017년부터 투자를 크게 늘려 5년 간 3조5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설계와 R&D 등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는 데는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불황에서도 투자를 계속했던 조선사들의 투자는 2010년대 후반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채굴이 늘고 중국에서 친환경 연료인 LNG 수요가 급증하면서 LNG 운반선의 발주량이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수 년 간 R&D 투자를 지속해 온 덕에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운반선 수주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여기에 저가 공세로 ‘치킨게임’을 벌였던 중국 조선사들이 상당수 문을 닫으면서, 2020년 이후 국내 조선사들은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

한때 몰락하는 국내 제조업의 대표 사례로 꼽혔던 조선업의 화려한 부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대외 불확실성으로 업황은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게 마련인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체질 개선과 미래를 향한 투자를 지속해야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조선업과 대조적으로 전기차에 탑재되는 2차전지를 만드는 회사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전기차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줄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원유 시추를 크게 늘려 유가를 떨어뜨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전기차는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그러나 2차전지 제조사 등이 당장은 어려움을 겪어도 이들 역시 나중에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의 1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전기차 사업을 하는 데다,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미 전기차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상황이라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2차전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분기까지 R&D에 7983억원을 투자했다. 4분기까지 포함하면 연간 전체 R&D 투자는 1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는 늘리고 있는 것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올해 사업 환경이 매우 어렵다”면서도 “이길 수 있는 차별화 제품 기술을 위한 자원 투입은 확대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어둠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이 지금의 조선사처럼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