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장님. 이번에 그 지긋지긋한 외부감사 주기적 지정제에서 풀려난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사실 말이 안 되죠. 3년이나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직접 지정해주다니요. 그러다 보니 선정된 회계법인도 감사 보수 협상에서 굳이 가격을 내릴 이유가 없었죠. 압니다, 알아요. 너무 비싸게 불렀죠.

하지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안 그래도 올해 자유수임으로 풀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이 30여곳에 달하는 등 큰 장이 열렸더라고요.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4대 회계법인 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죠. 아시잖아요, 요즘 회계업계 불황이라 ‘일단 (감사인 자리) 따고 보자’고 한다더라고요.

자, 이제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선호하는 회계법인이 따로 있으시죠? 가만히 계시면 다른 회계법인들이 알아서 수임료를 낮춰서 제시할 겁니다. 뽑혀야 하니까요. 그럼 원하는 회계법인에 가서, ‘다른 곳은 이 가격을 제안했는데, 너희도 이 단가를 맞춰주면 계약할게’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결국은 감사 보수도 낮추고, 원하는 곳과 계약할 수 있습니다. 참, 쉽죠?”

위 내용은 최근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사 보수 인하 출혈 경쟁에 대해, 한 상장사 사장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에선 기업 유치를 위한 더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4대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실적을 올리기 위한 제살깎기식 보수 인하로, 수임료 상한선 자체가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는 4대 회계법인이 지정 감사 보수 대비 30% 이상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지정 감사를 받을 땐 시간당 12만원을 지급하다가, 자유수임이 가능해지면 경쟁이 붙어서 단가가 8만, 9만원으로 내려가게 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이보다 더 낮춘 보수 수수료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시장 경제에서 경쟁이 붙으면 가격이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 다만 우려되는 건 회계 투명성이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사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재계의 강한 저항에도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인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했다. 수임 경쟁이 없어 감사 보수가 다소 높게 책정되고, 회계법인들은 기업 눈치 보지 않고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에서다.

업계에선 아직은 이런 출혈 경쟁의 부작용이 크게 눈에 띄진 않는다고 얘기한다. 첫 주기적 지정제 적용 기업들이 자유 선임제로 전환되기 시작한 게 불과 2023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가 수주가 계속되면, 힘이 약한 중소형 회계법인부터 ‘이 돈 받고 감사를 열심히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 심한 곳은, 감사의견 ‘적정’을 약속하고 수임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지정 감사제를 무조건 더 확대하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외감법 도입 이후 감사 보수가 너무 가파르게 치솟았다는 재계의 불만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지정 감사인지, 자유 선임인지에 따라 감사 보수 편차가 크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장 눈앞의 실적을 위해 재계의 강한 반발을 물리치면서 지켜온 감사 독립성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도록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둑을 쌓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