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재무장의 시대를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등 단기 긴급 상황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국방비를 확대해야 한다. 유럽 내에서 생산된 무기를 구매하는 회원국들에 최대 1500억유로(약 237조원)의 대출을 제공하겠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 재무장(REARM Europe) 계획’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시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한 데 따른 반대급부로 유럽 차원의 자강론을 역설한 것이다.

유럽은 재무장을 위해 총 8000억유로(약 1266조원)를 동원하고, 이 중 1500억유로는 ‘유럽산 무기’만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머지 6500억유로 상당을 두고 한국 방위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지만, 유럽 국가들이 역내 방위산업 진흥에 대부분을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권 국가와 방산 업체는 가성비, 빠른 납기를 앞세워 시장을 비집고 들어간 한국 방산에 대한 견제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이들은 곳곳에 군수 공장을 건설해 장기간의 평화로 약화했던 생산 능력을 다시 키우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한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도 유럽이 자체 수급 구조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이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경제 대격변의 시기, 개별 업체의 역량만으로는 블록(Block)화된 시장의 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방산 수출은 국가 간에 이뤄진다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만큼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의 콘트롤타워 부재로 기민한 대응이 어려워진 것은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 과거 방산물자 수출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업계의 우려를 샀던 야당의 태세 변환은 환영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SNS를 통해 “민주당은 국익을 위해 K-방산을 적극 지원하고 육성하겠다. 우리 방위산업은 가장 가시적인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이고, 각지의 전쟁 억지력을 높일 수 있게 하는 세계 안보 수호 수단이자 우리의 국격”이라고 썼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경기 한파 속에서 수출 성사 소식을 알려오며 국민의 자부심을 높여 왔다. 혼란한 시국이 마무리되면 정부, 국회, 민간이 힘을 합쳐 방산 수출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