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양자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은 10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지난주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연세퀀텀위크 2025′ 행사가 열렸다.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한 연세대는 세계적인 양자과학 연구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행사장에는 윤동섭 연대 총장과 허동수 연대 이사장이 얼굴을 보였고, IBM을 비롯해 국내외 양자과학기술 기업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금방이라도 한국이 양자과학기술 선도국에 오를 것 같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행사장에서 만난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양자 문해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양자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고전적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전적 컴퓨터가 0과 1의 이진법으로 연산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을 활용해 동시에 여러 계산을 수행할 수 있어 특정 문제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한다. 기존 컴퓨터공학 정보나 단순한 프로그래밍 지식만으로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하기 어려운 것도 개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양자컴퓨터의 원리와 양자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최적화, 오류 정정 기술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 단장은 국내에 양자컴퓨터와 관련한 알고리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인재가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양자과학기술 전문 인력이 부족한 건 그 저변이 되는 양자 문해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양자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과 중국은 양자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연구 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Q-12′ 교육 프로그램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기존 K-12 교육 과정에 양자컴퓨터 교육을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과 국립과학재단이 주도한다. 연방 정부와 산업계, 교육 기관이 협력해 미래 양자 산업을 대비한 인재를 조기에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Q-12′ 프로그램은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실제 양자 도구를 다룰 수 있는 실습 환경을 제공한다. 인턴십, 외부연수, 산업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양자 기술을 경험할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대학 중심의 양자 교육을 넘어서 중·고등학교에서 커뮤니티 칼리지, 온라인 강의까지 확장하며 양자 문해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다. 올해 초, 베이징대와 중국과학기술대를 포함한 60개 이상 대학에서 양자컴퓨터 인재 양성을 위한 독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중국 교육부가 2020년 양자정보과학을 대학 전공에 처음 추가한 이후, 해당 전공을 개설한 대학은 13곳에 달한다. 중국 정부 차원의 지원과 대학, 연구기관의 협력이 맞물려 빠르게 양자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 양자컴퓨터 관련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지만, 이는 극소수의 연구 인력을 대상으로 한 고급 과정에 불과하다. 초·중등 과정에서는 양자과학기술을 접할 기회조차 거의 없으며,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양자 기술에 대한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미래의 양자 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 역시 한정된 범위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양자 문해력은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자에 국한된 소양이 아니다. 양자과학기술의 응용 분야는 바이오, 금융, 화학 소재 같이 무궁무진하지만 사회 전반의 양자 문해력이 부족하면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다. 정 단장 역시 암을 연구하는 의대 교수지만, 양자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덕분에 양자사업단을 이끌게 됐다.
연대 행사가 던진 화두는 분명하다. 양자 문해력의 격차는 곧 기술 패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양자과학기술을 가르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없다면, 비싼 돈을 주고 양자컴퓨터를 사와도 어디에 써야 할 지도 모르는 처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