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모든 컷을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한 인공지능(AI) 업체 관계자가 AI가 괴물을 형상화한 영상물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구체화할 수 있다. 좀비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미야자키 감독은 “인간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인다. 정말 역겹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는 비단 80대 노장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40대 현지 만화 제작 및 유통 업체 대표는 “일본 창작자들은 AI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라며 “개인적으로는 AI는 창작자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중히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AI를 쓰면 편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AI 시대에 콘텐츠 회사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일까. 장수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자연스럽게 무궁무진한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로 확장된다. 대중은 이른바 ‘대작’을 평가할 때 창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는지 따져본다. 라인망가를 이끄는 김신배 라인디지털프론티어 대표 역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도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때 창작에 적용되는 기술에 관해 설명하기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힘‘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웹툰 선두주자로 꼽히지만, 최근 성장세는 다소 둔화한 모습이다. 지난해 카카오의 경우 게임·웹툰·영상제작 등을 담당하는 ‘콘텐츠’ 부문 매출액이 전년 대비 1% 감소한 3조9710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웹툰의 모회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사업을 앞세워 성장 중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봄툰’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키다리스튜디오는 지난해 3분기 웹툰 부문 매출이 116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8% 성장에 그쳤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웹툰 역시 AI 활용에 대한 갈림길에 선 모양새다. 이용자들은 웹툰 업계가 ‘창의성’과 ‘다양성’을 잃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AI 기술이 웹툰 작업에 도입된 이후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들이 플랫폼을 도배하고 있다. 명작은 국경과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는다. 웹툰업계가 AI의 홍수 속에서 다시 부흥기를 이끌 명품 IP를 발굴하고, 창작자 지원에 집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