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대주주 중심의 거버넌스가 지적돼 왔는데, 아니었다. 더 큰 폭탄이 숨어있었다. 바로 거버넌트(정부)다. 올해 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윤석열 정부가 결국 밸류업 정책을 제 발로 걷어찼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권에서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곧바로 해제했다. 우리나라에 비상 계엄이 내려진 것은 고작 6시간가량이었지만 이 여파로 금융·증권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정치적 불확실성에 떨어야 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한국 주식시장은 한동안 ‘트럼프 쇼크’ 등으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안 그래도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대통령이 직접 예상치 못한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국장에 주로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제발 정치 뉴스 좀 그만 보고 싶다”고 한다. 흔들리는 한국 증시에 확신을 줘야 할 정치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니 “한국 증시에 대한 마지막 기대도 사라진다”, “힘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과 정치인이 아무리 한국거래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한국 증시 부양’을 부르짖어도 결국 이런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 증시와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는다. 정치권에서 추진하겠다고 하는 정책의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고, 자꾸만 말이 바뀐다.
올해 초부터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도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정치인은 “금투세를 폐지해도 한국 증시가 대폭락했다”며 “금투세 폐지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여야가 정무적 판단을 배제한 채로 빠르게 금투세 폐지에 합의했다면 코스피·코스닥지수 폭락과 ‘4만전자’ 사태가 벌어진 지난 11월의 양상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 의무를 담는 걸 골자로 한 상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올 한 해 벌어진 소액 주주의 이익 침해 사례만 해도 여러 건이다. 윤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정부·여당이 직접 상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해 왔지만, 갑자기 말을 바꿨다.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가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여야 대치는 최악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상법 개정에 대해 정부·여당과 야당의 원활한 합의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우리나라 정치 환경은 앞으로 더 험난해질 일만 남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5일 발의됐는데 이는 오는 7일 오후 7시에 표결될 전망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당에서 8표의 이탈표가 나오면 탄핵안은 가결된다. 여당 내에서는 윤 대통령 탈당과 탄핵 찬반을 두고 내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 탄핵안이 가결되면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다.
정치판이 시끄러워지겠지만, 정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정부와 금융당국, 국회는 한국 증시를 뒷전으로 미뤄둬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권에서 추진해 온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직 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금투세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상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심도 깊게 논의해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정치가 증시의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