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한국을 찾았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끈 이후 청구된 영수증인 망 사용료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정부, 국회 관계자를 잇달아 만났다. 가필드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 추리닝’을 입고 미디어 오픈 토크에도 등장해 ‘깐부(같은 편)’를 언급하며 한국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결론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였다.

가필드 부사장이 한국에서 약 일주일 동안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깐부’는 없었다. 지난 2일 가필드 부사장은 방한 후 첫 공식 일정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았다. 김현 방통위 부위원장은 면담에서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김부겸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에서 망 사용료 문제를 언급하며 주문한 입장과 같다.

다음날 찾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이원욱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넷플릭스가 국내 통신 사업자와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망 사용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국회는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법으로 강제할 것이다”라고 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도 “망 사용료 지급 거부 등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가필드 부사장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예 면담을 취소했다.

예고된 결과다. 이미 전 국민이 지켜봤던 국정감사에서 국회와 정부는 망 사용료 부과 방침을 명확히 했다. 넷플릭스 부사장 방한을 계기로 입장을 뒤바꿀 리 없다. 입장을 뒤집는다면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게 된다.

법정 공방을 위해 고용했던 깐부도 시원치 않다. 지난해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라며 기세 좋게 법원을 찾았지만, 올해 6월 나온 결과는 ‘원고(넷플릭스) 패’였다. 가필드 부사장이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출국한 지난 5일 넷플릭스 변호인단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장기전을 의식한 듯 넷플릭스는 사내 법무팀 인력 확충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경쟁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는 넷플릭스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이달 국내에 상륙한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는 사실상 망 사용료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디즈니플러스와 독점 계약한 LG유플러스는 “디즈니가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와 계약을 맺고, 우리도 CDN과 계약하기 때문에 망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구조다”라고 설명한다. 최근 애플TV플러스는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CDN 방식을 택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는 소송을 시작으로 국회, 정부와 만나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버티는 넷플릭스가 애처롭기도 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하니,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겪는 중이다. 넷플릭스가 간과한 점이 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공룡을 대상으로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법 개정안)을 시행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