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년도 기초연구사업 시행계획이 발표됐다. 2023년부터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과 사업구조에 많은 변화가 있으면서 연구현장에 큰 충격이 있었기에, 내년의 방향과 예산 규모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대학의 기초의학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내년 사업의 주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설명은 일단 안심되는 내용이었다.

일단 전체 예산 규모에서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예산 2조3413억에 교육부 예산이 합쳐지면 2조9371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이다. 이는 올해보다 3045억원 이상 늘어난 규모다. 내용도 이전과 달랐다. 3조원 가까운 기초연구사업의 구성을 살펴보면, 연구자의 성장과 함께 세계 최초, 최고 수준의 연구 발전을 함께 성취하겠다는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정부의 R&D 지원정책은 이전 5년간(2017-2022년) 기조가 ‘연구자 중심’ 기초연구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박사급 연구자가 시작하는 단계에서 작은 규모라도 다수에게 지원하는 기회를 주고,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 높은 단계에서 점차 소수의 우수연구자를 집중 지원해 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향은 연구자 입장에서 바람직하지만, 납세자의 입장과 혁신적 성과를 고려하는 지원 부처의 입장에서 확신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 연구자를 믿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성과 산출이 예상되는 관성적 연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올해부터 기초연구사업에서 ‘세계 최초, 최고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연구’라는 관점 변화가 최근 요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요구가 반영된 2025년 시행계획에 새로 담긴 기초연구사업 중 몇 가지가 눈길을 끈다. ‘개척연구’는 과감히 도전하는 최초의 질문을 통한 새로운 학문 분야 개척, 태동하는 분야의 개념 탐색·정립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무척 반갑다. 함께 신설된 ‘국가아젠다 기초연구’는 정부 차원의 국가전략이 반영되는 정책분야를 지정하고, 해당 분야 안에서 연구자가 자유로운 제안을 통해 연구를 수행하는 사업이다. 기존의 우수신진-중견-리더연구자로 이어지는 연구자 성장형 지원사업과 함께 연구 영역의 확장과 전략성을 함께 잡는 구상이라 보인다.

기초연구지원의 양축은 개인연구와 집단연구다. 최근 집단연구 지원사업 방향은 3~5인의 기초연구실이 10인 내외 선도연구센터로 발전하는 기본 틀에 혁신분야 선도연구센터(IRC)가 더해졌다. 2025년에는 연간 100억원 규모가 과감하게 투입되는 국가연구소(NRL2.0) 사업이 기초연구지원의 틀에 담겨 화제가 됐다.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연구 사업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예산 세부항목을 미리 정하거나 규제하지 않는 블록펀딩(묶음 예산)을 통한 패키지 지원으로 연구·인력·시설 등의 발전을 유연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글로벌 수준의 대학연구소 육성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치열한 과학기술 패권전쟁 시대에 규모와 자율성을 갖춘 글로벌 연구소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대부분 이 방향에 공감한다.

아무쪼록 향후 추가되는 예산이 집단연구의 기반을 다지는데 반영되기 바란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집단연구 신사업으로 인해 집단연구의 시작단계인 기초연구실 사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학회 참석을 위해 중국의 몇몇 대학과 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과학기술 연구 지원의 규모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의 자신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무슨 단어로 표현할까 싶었는데 이번 기초연구사업 계획을 보면서 그 단어가 ‘기세(氣勢)’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국가의 기초연구 지원은 그 나라 과학 연구의 기세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과감함을 넘어 때로는 다소 과도해 보일지라도, 글로벌 연구 현장에서 과감하게 나가려면 뒤가 든든하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학회에서 만난 해외 연구자를 초청하고 방문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 기술과 지식을 함께하자고 지르는 카드가 주머니에 없으면 제안하는 공동 연구의 수준이 높아지기 어렵다.

최근 기초연구 지원의 핵심 방향은 ‘글로벌’이다. 이를 반영하여 중견연구 이상의 주요 사업명에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지원 기관들과의 협력사업을 연구재단에서 주도하고 있다. 해외 연구자들이 한국과 손잡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연구하도록 이끌려면 우리 연구자들의 기세가 높아져야 한다. 정부가 2025년에 최대 규모 기초연구 지원을 넘어서서 연구자들이 더 큰 그림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통 큰 지원을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