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역, 역삼역 뒷골목 식당가가 매일 저녁 썰렁합니다. 여기서 25년 일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최근 만난 대기업 관계자들의 얘기다. 처음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기자가 즐기던 서촌의 한 고깃집도 영업난에 갑자기 문을 닫았다.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 된다”는 게 폐업 직전 사장의 목소리였다.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법조계도 불경기라며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1000~5000원 저가 상품을 파는 다이소가 역대급 실적을 연이어 경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힌 것이다.

올해 한국 경제는 잿빛 전망으로 가득하다. 반도체와 화학 등 수출 주력 품목의 실적이 부진하고, 이에 따라 경제 성장도 심각하게 둔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수출 주력 품목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를 예고한 탓에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방산 및 뷰티를 위시한 소비재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삼성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의 괄목할 만한 혁신과 생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1% 중반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측됐지만, 트럼프의 정책 방향에 따라 1% 초반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각한 저성장이 예상되는 것이다.

당면한 과제는 소비다. 탄핵정국 속 소비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는 연일 악화하고 있다. 가계 소비의 최후 보루인 방학 교육비마저 최근 감소했다. 소비 심리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경제 정책, 정치적 안정, 외부 충격 대응 등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한 사립대 교수는 최근 포럼에서 “‘소비 진작의 달’ 같은 캠페인을 만들어 국민이 적극적인 소비에 나설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인위적인 방법으로 소비가 정말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오죽하면 저런 아이디어를 냈나 싶기도 했다.

경제를 망치는 최악의 요인은 불확실성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차관은 연이어 식품 및 외식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그런데도 라면부터 맥주까지 모든 식품 가격은 매일 오르고 있다. 탄핵정국 불안한 국가 리더십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권의 큰 방향성이 아직 미궁인 탓이다.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식품회사들에 직격탄을 날렸지만, 이 발언이 먹힐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가진 자는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에, 덜 가진 자는 어찌 될지 모르는 사회 전망에 지갑을 쉽게 열지 못한다. 당장의 삶도 앞으로의 삶도 모두 불확실해 보이는 거다.

헌법재판소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더 이상 답을 미뤄서는 안 된다. 대내외적으로 엄혹한 시기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소중한 1분기를 빈손으로 흘려보냈다. 아울러 탄핵정국이 마무리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경제를 제 궤도로 돌려놓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미국의 새 정부 및 기업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고려해야 한다. 추경의 목적도 죽어버린 소비 살리기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