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빼서 비트코인에 넣어주세요.”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며칠 전 방과 후 전화를 걸어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식 공부도 시킬 겸 아들이 그동안 모은 용돈을 삼성전자에 대신 투자해 줬는데,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자 그새를 못 참고 가상자산에 투자하겠단 것이다. 자기가 보기에 비트코인이 지금 바닥인데 두 배는 오를 것 같다며 비트코인에 ‘몰빵’하겠다고 했다.

실체 없는 거품으로 금세 꺼질 것 같던 가상자산 투자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수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거래대금도 주식시장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12월 가상자산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7조1155억원으로 주식시장 일평균 거래대금 15조6682억원보다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비상계엄 선포 영향이 맞물려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선 지난해 12월 초 일주일 새 100조원이 거래되기도 했다. 10대 청소년마저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겠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010년 5월 비트코인 1만개를 받고 피자 두 판을 배달한 역사적 거래가 성사됐는데, 현재 가격으로 치면 피자 두 판 가격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월 2일 4만4000달러선에서 시작해 같은 해 12월 10만9000달러까지 급등했다. 상승률이 무려 147%에 달한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의 지난해 수익률이 47% 정도 된다. 이쯤 되면 비트코인이 실물 금을 대체하는 디지털 금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8장 분량의 백서를 공개하며 탄생했다. 핵심은 은행과 정부 개입 없이 개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전자화폐였다. 탈중앙화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 권력을 개인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였다.

비트코인 등장 초기 ‘사기다,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전히 비트코인을 ‘튤립 버블(17세기 네덜란드의 과열 투기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에선 대표적으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7년 “비트코인은 경제학적으로 가치가 없는 사기와 다름없다”고 했다. 일부 누리꾼은 “유시민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 그는 비트코인을 ‘팔기’가 아니라 매수를 뜻하는 ‘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수많은 비관론에도 비트코인은 제도권 입성에 성공했다. 지난해 1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비롯해 피델리티, 그레이스케일 등이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돼 전 세계 비트코인 113만개가량이 미국 자본시장에 편입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삼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올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정치권도 젊은 층 표심을 잡기 위해 가상자산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현물 ETF 도입, 비트코인 비축 논의 등이 오간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비트코인이 상품인지 화폐인지 자산인지도 정리돼 있지 않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1단계 법안은 제한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한계를 갖고 있다. 가상자산의 발행이나 인프라 규제 및 육성 등 보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비트코인이 세계 공용 디지털 자산이 될지 아니면 튤립 버블처럼 몰락할지 아직 알 수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는 비트코인이 10년 안에 0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비트코인은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비트코인은 이미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총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돼 희소성이 보장되고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게 비트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