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한 번에 성공한 줄 알지만 그 전에 수없는 창업과 실패를 반복했다” 고(故)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이사가 지난 2012년 청년창업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실패한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은 무시당하고, 버려져 왔다. 우리 사회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과 벤처 창업으로 몰리고 있다.

숫자를 봐도 그렇다. 국내 벤처기업 수는 3만6503개로 2000년 1차 벤처붐 당시보다 3배를 웃돈다. 벤처캐피털(VC)의 신규 투자 금액은 7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벤처 창업자들의 꿈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도 18곳으로 늘었다. VC업계에서는 제2의 벤처붐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말 그대로 벤처는 돈과 인재가 한꺼번에 몰리는 가장 뜨거운 시장이 됐다.

제2 벤처붐은 2000년 1차 벤처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남의 돈으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벤처 창업자는 회사와 연대보증이 없어져 실패하더라도 개인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다. 벤처생태계의 중심에는 창업자가 있다. 이전과는 다른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이제 실패해도 재창업이 가능해진 생태계를 만든 셈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VC와 벤처업계에서 나오는 전망이 장밋빛 일색이라는 점이다. ‘붐’ 즉 호황은 ‘거품’의 다른말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일은 지나치면 정상화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실제 2000년 1차 벤처붐 당시에도 벤처기업은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라며 장밋빛 전망이 일색이었지만, 불과 2년만에 위기에 빠졌다. 이 기간 벤처기업의 절반이 사라졌다. 투자를 한 VC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곧바로 대기업으로의 인력 유턴현상이 발생했고, 벤처업계는 인력난이 빠졌다. 당연히 젊은 인재의 유입이 감소하자, 화수분처럼 들어오던 뭉칫돈도 뚝 끊겼다. 여기에 벤처 창업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코스닥 버블과 함께 나타난 한탕주의는 벤처를 순식간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만들었다.

위기는 ‘회색 코뿔소(이미 알려졌지만 방심해 찾아오는 위험)’처럼 찾아온다. 대다수가 위험을 인지하고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으면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온다.

지금 VC에서 받는 투자금의 대부분은 개발자 몫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돈이 몰리자 스톡옵션을 남발하고, 이로 인한 개발자들의 잦은 이직은 벤처업계의 고민이 된지 오래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창업자가 특정 회사 출신이 아니면 큰 투자를 받기 어려워진 끼리끼리 문화도 벤처업계의 오랜 관행처럼 배어 있다.

자연스럽게 망했어야 할 회사들도 눈먼 돈을 받고 연명한다. 여기에 계속해서 투자금을 받아 덩치만 키우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인수합병(M&A)이나 상장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미 바이오 관련 벤처의 경우 거래소가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상장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실 사멸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다. 벤처는 ‘위기’와 ‘기회’를 함께 먹으며 자라난다. 이번 제2 벤처붐도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1차 벤처붐은 우리나라를 세계 IT강국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라는 구조적인 사슬에서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벤처였다. 밤늦게까지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아 한때 ‘오징어잡이배’, ‘구로의 등대’로 불리며 일한 젊은 벤처 창업자들의 피와 땀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고 김정주 NXC 이사도 1차 벤처붐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성공한 1세대 벤처인들은 한국시장에서 글로벌 IT 기업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이 파고를 막는 것도 버거워 그들은 아쉽게도 큰 물로는 나가지 못했다. 고 김정주 NXC 이사는 넥슨을 아시아의 디즈니로 만드는 것을 꿈꿨다. 큰 물에서 놀고 싶었지만 그의 꿈은 미완으로 남았다. 이는 2차 벤처붐으로 탄생할 다음세대 주인공들의 몫이다. 창업자들의 실패가 경험으로 인정받고, 이를 뒷받침 하는 돈과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 이제 시작된 제2 벤처붐은 또 어떤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