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가상화폐 투자 열풍으로 덮였다.
가상화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세계 굴지의 회사 창업자의 발언이 반복되고 가상화폐를 규제하려는 주요 국가들의 행정 조치와 거품 논란이 잇따르고 있지만, 한때 존재 가치마저 의심받던 가상화폐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거래 수단이란 화폐 기능의 여부를 떠나 거스를 수 없는 투자 대상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데서 빠질 우리가 아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가상화폐 원조와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투자 열기가 번졌지만, 뜨겁기와 투자 몰입도론 세계 어느 나라 이상이다.
직장인 4명 가운데 1명은 하고 있다는 가상화폐 투자. 블록체인 기술이다 뭐다 하지만, 금융 당국도 투자자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실체도 모호한 대상에 왜 그리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의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유독 뜨거운 건, 영혼까지 끌어다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2030 젊은 세대의 애절한 현실이 함께 타고 있어서일지 모르겠다.
최근 한 구인구직 매칭 포털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30대의 절반가량(49.8%)이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37.1%, 40대 34.5%, 50대 이상은 16.9%가 가상화폐에 투자 중이다.
가상화폐 앱 사용자를 봐도 2030 세대에 집중돼 있다. 한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이 발표한 ‘가상화폐 앱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화폐 월 사용자 수는 지난해 10월 100만명 정도였으나 11월엔 134만6199명, 12월 156만5499명, 올해 1월 들어 214만6074명으로 늘었고 2월 들어선 최초로 300만명대를 넘어섰다.
특히 2030 세대가 모바일 가상화폐 시장에 대거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상화폐 앱 사용자 중 2030 비중은 지난해 10월 52.7%에서 올해 2월에는 60%에 육박할 정도로 확대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32.11%로 가장 많았고, 30대(26.85%), 40대(22.37%), 50대(13.28%), 60대(2.8%), 10대(2.53%) 순이었다.
그들은 어쩌다 가상화폐로 ‘대동단결’한 것일까. 세상은 젊은 세대가 가상화폐 투자(또는 투기)에 빠졌다고 말하겠지만, 이들에게 가상화폐는 끊어져 버린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대체할 또 하나의 사다리로 서둘러 끌어올 수밖에 없는 선택지이지 않을까 싶다.
꽉 틀어막힌 담보대출 규제와 ‘넘사벽’이 된 신규 청약, 천정부지 집값 폭등으로 내몰린 ‘벼락거지'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자구책인 거로 볼 수도 있겠다. ‘한탕주의' ‘불로소득'이란 비난의 꼬리표가 붙지만 이들에겐 벼락거지를 면할, 빼앗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라도 잡아야 할 지푸라기인 셈이다.
가상화폐로 수천, 수억원을 벌었다는 체험담과 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제 없는 거래와 빠른 투자 결과, 쪽박 우려는 몇십배 대박 기대감에 쉽게 가려지는 허황된 구석이 조급해진 2030 세대를 흔드는 우려도 있지만,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가 갈수록 희박해지는 2030 세대에 있어 가상화폐는 위험하지만 그들의 꿈을 지켜줄 한 줄기 빛 정도는 돼 보인다.
가상화폐 투자가 이들이 스스로 세우려는 계층 상승과 주거 사다리가 돼 줄지는 모르겠다. 짧은 시간에 2배가 되기도, 반토막도 나는 게 가상화폐다. 걱정이 되는 건, 이렇게 휘발성이 강한 가상화폐에 넣은 2030 세대의 투자금 중 상당액이 빚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42조2278억원으로, 전월보다 4.80%(6조8401억원) 증가했다. 이목이 쏠린 대형 공모주 청약을 위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난달 비트코인이 신고가를 기록한 이후 신용대출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금융권은 파악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서야 투자 과열과 투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까지 들먹이며 과열 진화에 나서려고 하지만, 오히려 시장의 반발만 사고 있다. 빚까지 동원해 코인 시장에서 보상을 받으려는 젊은 세대의 성난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면, 거래소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올릴 게 아니라, 제도 미비로 작전이 난무하고 사기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투자자를 보호할 제도적 틀을 서둘러 갖추는게 옳지 싶다.
보상을 위한 투자라고 해서 장려할 수도 없고, 변동성만큼 투자 위험이 크니 투자하지 말라고 이들을 말릴 수도 없다. 투자의 책임은 당사자가 질 문제지만, 다만 부동산에서 성난 2030의 민심이 가상화폐에서도 반복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