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조소 작품 전시를 앞 둔 김준규 전 검찰총장./사진=남강호 기자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흙 파먹고 살기로’ 결심한 지 1년이 지났다. 50점의 작품을 빚은 후 작가로서 첫 전시회도 연다. 그의 변화와 결심이 궁금해, 용산에 있는 김 전 총장의 자택을 찾았다. 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늦가을 오후, 화단의 나무가 드높은 고즈넉한 옛 아파트에서 내외가 반겼다. 노작가는 와인을 권했으나 커피를 마셨다.

거실에 고인 엷은 햇살 아래 옹기종기 모인 흙작품들... 아버지와 아들, 구슬 치는 아이들, 손녀상, 아내상, 기도하는 손, 목사님, 예수님이 정겨웠다. 흙으로 빚은 크고 작은 조형물은 제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김준규의 몸에서 파생된 또 한무리의 유사 가족처럼 보였다.

내려 앉은 흙먼지와 갓 내린 싱싱한 커피 향이 공기 중에 적당한 밀도를 만들어 냈고, 금방 빚어낸 정물이 오래된 가구와 사물 속에서 태평했다. 질서 속의 무질서… 문득 흙 속에 묻혀 저렇게 나이들면 좋겠다는 안도감에 젖었다.

그가 변호사로 일하던 대형 로펌(법무법인 화우)에 사표를 낸 건 2020년 3월이었다. 김준규는 1984년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 검찰 총장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1년 퇴임했다. 과거 영광의 찌꺼기를 먹고 살고 싶지 않아, 남은 노후를 ‘흙 파먹고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때 권력의 칼끝에서 정점을 맛봤던 66세 신인 작가의 패기가 놀라웠다.

-왜 흙인가요?

“제가 흙을 좋아해요. 아날로그적인 촉감이 얼마나 좋아요. 만질 때도 좋지만, 하루 작업 다 끝내고 씻을 때도 좋아요. 노동의 시원함과 흡족함이 있어요.”

흙 작가라는 타이틀은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보통 조각가, 조소 작가라고 하죠. 다들 흙으로 하는 조소는 기초 작업으로 봐요. 그래서 본격적인 도전을 안하죠. 네 다섯 작품 하고는 다 그만둬. 시장도 없고 상품성도 없거든. 허허. 그래서 내가 100점을 만들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그러면 나를 전업 작가로 인정하지 않겠어요?”

말끝에 슬쩍 억울함이 묻어났다.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오는 비통. ‘다 이루었다’ 싶을 만큼, 직업적으로는 해볼만큼 해본 그가 뭐가 아쉬워 66세에 멀리뛰기를 시작했을까.

-주변에서 많이들 부러워할텐데요. 인생 2막을 여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복받은 인생 아닙니까?

“하하. 주변에서 부러워는 안해요. 시기를 하죠. ‘검찰 총장까지 해먹고, 먹고 살만하니 조각까지 한다, 잘 논다’... 취미로 한다고 할 땐 별 공격이 없었어요. 직업으로 한다니 말들이 많아요., 미술계에서도 흠부터 잡아요. 비례가 안 맞다느니, 표현이 두리뭉술 하다느니… 그런데 저, 조소 작업을 고교 시절부터 했어요. 홍대 미대에서 상도 받았고, 미국에서 법무관 생활할 때도 흙을 만졌어요. 흙작가였던 내가 법을 다룬 건지, 법전을 만지던 내가 흙을 만지는 건지… 전후의 어떤 내가 더 맞는 나였는지도 아리송한 걸요. 허허.”

흙의 질감이 풍성한 김준규의 작품들./사진=남강호 기자

작가는 자기 작품을 설명할 때, 가장 신나는 법. 구슬놀이를 하는 소년들을 빚은 작품을 보고 ‘박수근 화백의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눈에 총기가 돌았다.

“이거 보세요. 두 놈 씩 편을 먹고 구슬을 쳐요. 그런데 옷을 안 입고 발가벗었잖아요. 근육과 자세는 정교하지만 몸은 단순해요. 표정도 슥~ 선으로 그었지만, 신나고 찡그리고 억울한 게 다 있잖아요. 토우 기법을 활용했어요. 원시 시대 할아버지가 손주한테 흙으로 빚어 툭 던져주는 장난감처럼…”

그렇게 단순함과 천진함이 살아 움직이는 유년의 놀이터 풍경 옆엔 신경의 표정 선까지 툭툭 불거진 손 조각이 리얼하다. 손의 표정 안에 저런 힘과 간절함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런가 하면 노년의 아버지(피아니스트 고 김형근)와 자신을 나란히 놓고 만든 ‘부자상’은 산전 수전 유전이라는 흐름 안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아버지와 저를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 똑같은 거예요. 골상의 구조가 같으니 차이를 만들어내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터득했어요. 생김새가 아니라 결국 자기 삶이 차이를 만들어내는구나. 아버지는 피아노를, 저는 법을 했잖아요. 그 삶의 역동과 철학이, 분위기가 돼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흉상을 한 30개 더 주문받아 해보려고요. 대기업 회장들, 흉상 보면 모습만 비슷하지 살아온 흔적이 없잖아요? 저는 함께 여행도 가고 시간을 보내면서 그 사람의 삶까지 흙으로 빚어보려고요.”

-야심이 크십니다. 흙 조소 위에 청동으로 본을 뜨는 브론즈 작업을 하면 상품화가 더 쉽지 않나요?

“브론즈는 더 쉽죠. 몇 개씩 만들어 낼 수도 있고요. 흙은 가마에 구우려면 안에 있는 흙을 일일이 다 파야하니 힘들어요. 하지만 이건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 더 애틋하죠. 흙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모르시는 말씀! 그런 말하는 사람들한테 제가 그래요. ‘너 빗살무늬 토기 아니? 3천 년 갔다.’ 하하.”

시장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 떨면 ‘검찰 총장’에 대형 로펌 출신이라는 과거 ‘레테르’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재택 변호사’를 작파하고, 전업 조각가의 삶으로 뛰어든 이유가 뭘까? 목표 지향적인 습속 때문에? 예술가로서 또 한번의 메달을 따고 싶어서?

“두 가지예요. 하나는 제가 선수들이 다 떠난 빈 트랙을 계속 돌고 있다는 느낌때문이에요. 제 분야에서 높은 자리까지 가봤으니 1등은 한 건데… 이미 결승전을 지나와서도 트랙을 달리는 느낌이었어요. 이대로 달리다 죽는 건, 진짜 아니다 싶더라고요. 65세이후 부터는 다르게 새롭게 살고 싶었어요. 그때 생각난 게 고등학교 때 공부한다고 접었던 조소에 대한 욕망이었죠.

나이 들었으니, 쉬엄쉬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어느날 책에서 어부와 낚시꾼의 태도에 대한 글을 읽고 맘을 세게 잡았어요. 낚시꾼은 나가고 싶을 때만 나가고 대어만 자랑하잖아요. 어부는 달라요. 어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다에 나가고 내가 잡고 싶은 것, 팔릴 것 다 잡아요.”

그렇게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 조각을 대하니, 자나깨나 작품 생각이라고 했다. 노년을 표현할 때의 ‘여생을 보내다’ 혹은 ‘여일하다’라고 할 때의 한가함은 물 건너간지 오래.

“성경 구절을 읽다가도 공간이 생각나고, ‘내가 크면 어떻게 변할까?’ 손녀의 말 한마디도 모티브가 돼요. 계속 영감이 떠오르고 조금씩 나아져요. 그 맛이 참 좋아요.”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를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선악의 세계에서 미추의 세계로 넘어오셨는데요.

“(미소 지으며)높은 자리에 있으면 남의 나쁜 짓이 다 보여요. 안부 전화 한 통 해도 사람들이 쩔쩔 매죠. 그런데 거기 빠지면 안돼요. 그러면 삐뚤어 지거든. 요즘 검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많잖아요? 좋은 모습, 나쁜 모습 다 있지만, 드라마와 현실의 검사는 많이 달라요.

제가 검찰 총장 할 때, 드라마 작가 100명을 초대해서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지인 중에 검사가 있냐”고 하니까 딱 한 사람 손을 들었어요. 그러니 대개는 상상의 산물이죠. 과거 얘기지만, 영화 속의 검사를 소재로 대학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최근엔 현실이 더 드라마 같더군요. 전직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고, 검사 출신의 정치인도 입방아에 올랐습니다만.

“뉴스는 안 봐요. 정치를 싫어해요. 정치는 헛 것, 허상이예요. 저한텐 미술이 더 사실적이죠.”

-검사로 일할 때는 어땠습니까?

“그때는 내 앞에서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범죄자는 형기를 줄이려고 거짓을 말하고, 피해자는 부풀리려고 딴소리를 하죠.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 작업이 어려웠어요. 판사는 검사가 가져온 사건으로 판결을 하고, 변호사는 돈 받고 변호하니 직접 판단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검사로서 사실적 진실을 판단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지나온 세월을 보듬어보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참 많다고 나즈막히 말했다.

개신교 장로인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흙작품으로 형상화 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 저 여인을 돌로 치라’며 간음한 여인을 변호하는 예수,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는 아버지… 그 물성 안에 온유한 인성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면 진흙으로 인간을 빚은 창조주의 생명 감각이 그를 끝내 흙의 세계로 이끈 것이 아닐런지.

'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 김준규 첫 전시회의 출품작.

-검사, 변호사, 조각가로 나이 먹어가면서 혹 가치관의 변화가 있으신지요?

“허허. 나는 똑같아요. 법을 했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진짜 나일 수도 있고요. 법대에 간 것도 경제학을 하려다 방향을 틀어본 거거든요. 그렇게 보면 직업은 정말 우연이에요. 그걸 우리가 소명으로 받아들일 뿐이지요.”

김준규의 첫 전시회는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종로구 한옥 갤러리 일백헌에서 열린다. 전시회 도중 어느날, 자기 얼굴을 형상화한 자소상(自塑像)을 물에 담가 흙으로 되돌리는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최근 그는 행사를 기획해준 국민학교 동창과 격론을 벌였다. ‘흙을 만지며, 손을 씻는다’와 ‘흙을 만지고, 손을 씻는다’ 중 어느 문장이 더 좋으냐는 것. 죄와 참회에 대한 은유? 혹은 노동의 명료함? 글쎄, 판단은 독자 여러분이 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