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부 탄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인텔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인텔이 3개월간 비어 있던 수장 자리에 립부 탄(65) 전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최고경영자(CEO)를 앉혔다. 반도체 업계 베테랑으로 평가받는 신임 CEO 탄은 인텔을 반드시 재건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텔은 12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탄이 오는 18일부터 CEO직을 맡게 되며, 지난해 8월 떠났던 이사회에도 다시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탄은 당초 인텔 이사회 핵심 멤버였으나 전임 CEO인 팻 겔싱어와의 사업 견해 차이로 회사를 떠났었다. 탄은 인텔의 사업 전략과 보수적인 관료 문화를 고치려 했으나 내부 반발이 컸다고 한다. 탄이 이사회를 떠난 지 4개월 뒤인 작년 12월 겔싱어는 실적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사회에 의해 해임됐다.

탄은 한때 반도체 업계를 주도했던 인텔의 경쟁력을 되살려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인텔은 과거 개인용컴퓨터(PC) 중앙처리장치(CPU)를 중심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했지만, 인공지능(AI) 가동에 필요한 고성능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 엔비디아 등 경쟁사에 뒤처졌다. 인텔의 텃밭이자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 서버용 CPU 시장에서는 AMD의 기세에 점점 밀리면서 실적마저 악화했다. 인텔은 지난해 순손실 188억달러(약 27조2600억원)를 기록하며 1986년 이후 첫 연간 적자를 냈다. 작년부터 인텔은 직원 1만5000여명을 감축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탄은 직원들에게 회사를 재건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결코 쉽지 않겠지만, 인텔이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굳게 믿기에 합류했다”며 “인텔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술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탄은 적자 늪에 빠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전임자 겔싱어는 인텔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대만 TSMC에 비견할 만한 회사로 만들겠다며 2021년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그러나 인텔 파운드리 사업은 지난 3년간 매해 7~14조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탄은 “인텔을 세계적인 제품 기업으로 재건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파운드리를 구축해 고객들에게 더 큰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 인텔을 재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서 싱가포르에서 자란 그는 난양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 MIT에서 원자력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받고 벤처 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04년 미국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인 케이던스 이사회에 합류했다. 이후 2008년 공동 CEO를, 2009년부터는 단독 CEO를 맡아 이후 10년 이상 회사를 이끌며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케이던스와 경쟁사인 시놉시스의 양강 체제를 확립했다.

인텔 의사회 의장인 프랭크 이어리는 “탄은 고객 중심 혁신을 바탕으로 문화를 바꿨고, CEO 재임 기간 케이던스의 매출을 두배 이상 늘리고 영업이익률을 확대해 주가 상승률도 3200%를 넘었다”며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을 인텔에서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 CEO 임명 소식에 시장은 반색했다. 지난 1년간 54% 하락한 인텔 주가는 이날 장외 거래에서 11% 급등했다. 현재 인텔의 시가 총액은 895억달러(약 130조원)로, 반도체 업계 시총 기준 ‘톱 10’ 기업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리서치업체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연구원은 “인텔에는 탄을 뽑는 게 최적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탄이 인텔을 회생시키지 못했다면 그건 애초에 인텔이 되살릴 수 없는 회사였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