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지난해 4분기 12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내놓았다. 연간으로도 10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창립한 이듬해인 26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모바일 게임 매출 급감과 신작 부진, 대규모 구조조정 비용이 겹치면서 회사의 핵심 사업 구조가 흔들렸다. 엔씨소프트는 독립 스튜디오 체제 전환, 글로벌 시장 공략 강화, 인공지능(AI) 사업화를 중심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반등을 노리겠다는 계획이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 대표는 12일 2024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 시장이 정체된 원인은 기존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이 반복 출시되면서 유저 경험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쓰론앤리버티(TL)’가 북미·유럽에서 누적 이용자 수 700만명을 확보, 글로벌 시장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MMORPG 수요가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2025년 하반기에 한국·대만부터 선보일 ‘아이온2’를 이후 북미·유럽으로도 확장 출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2분기부터 유저와 소통을 강화해 출시 전부터 게임 주요 특징을 공개하고, 과거 ‘아이온’과 ‘블레이드&소울’처럼 새로운 유저 경험을 제시한다면 시장이 재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신규 IP 확보와 장르 확장을 위해 연간 600억~7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서브컬처 게임·슈팅 장르에 집중 투자했으며, 액션 RPG 분야도 추가 진출을 검토 중이다. M&A(인수합병) 또한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가격 차로 올해는 성사되지 못했으며, 올해에도 국내외 기업과 협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자사주를 활용한 인수·합병 기회도 열어두고 있지만, 불발될 경우 추가 소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4분기 영업손실은 대규모 조직 효율화로 발생한 일회성 비용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며 “이는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2025년부터 3개년간 연결 지배주주 순이익의 30%를 현금 배당하고, 삼성동 NC타워 매각 이익은 배당에서 제외하고, 발행 주식 총수의 1.9%(약 41만 주)를 소각해 자사주 비율을 11.7%에서 9.98%로 낮출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본사 인력은 2024년 초 5000명에서 3100명 수준으로 줄이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 박 대표는 “1000여 명은 독립 스튜디오로 이동했고, 800~900여 명이 희망퇴직을 진행했다”면서 “추가 대규모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사는 기존 IP(리니지·아이온·블레이드&소울)를 직접 운영하고, 신규 IP와 다양한 장르는 독립 스튜디오나 퍼블리싱 형태로 진행해 개발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개발력·퍼블리싱·마케팅 등에서 부족했다는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였다”며 “조직 효율화와 스튜디오 분산을 통해 게임 완성도와 마케팅 ROI(투자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신작 출시 일정도 전면 재정비된다. MMORTS(전략 게임)인 ‘택탄(TACTAN)’은 2025년 1~2분기 안에 구체적인 출시 시점을 확정할 예정이며, 오픈월드 MMO 슈팅 ‘LLL’은 2025년 하반기 론칭을 목표로 2분기부터 FGT(포커스 그룹 테스트)와 CBT(비공개 테스트)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인다. 박 대표는 “무조건 대형 게임쇼에 참가하기보다, 유저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효율적으로 마케팅할 것”이라며 “2026년까지 PvP·PvE·MMORPG형 슈팅 등 6종 이상의 슈팅 게임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여 시너지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 사업화도 핵심 성장동력으로 꼽았다. 엔씨소프트는 7~8년간 축적한 자체 AI 기술에 스테이블 디퓨전·코파일럿 등 외부 솔루션을 접목해 게임 개발·운영·QA·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음성 합성(TTS), 애니메이션 자동화, 실시간 번역 등 인게임 기능을 한층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헬스케어·교육 등 다른 산업으로의 AI 솔루션 제공 역시 추진해 추가 매출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4분기 해외 및 로열티 매출 비중은 39%로, ‘길드워2’ 확장팩 판매와 TL의 글로벌 성과가 반영돼 성장세를 보였다. 홍 CFO는 “올해는 북미·유럽 시장을 겨냥한 퍼블리싱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중동·서남아시아 거점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며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지분을 보유한 만큼, 중동 시장 진출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2024년은 체질 개선의 해였고, 2025년부터 글로벌 신작 출시를 통해 실적 반등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지만, 효율적인 마케팅과 퍼블리싱 역량으로 ‘리니지 이후’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유저·투자자와 소통을 강화해 MMORPG 중심의 이미지를 넘어 다양한 장르에서 성장 기회를 만들고, AI·M&A 등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