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재택근무, 비대면 교육 효과로 급증했던 디스플레이 수요가 대면활동 재개로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널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을 견인하는 액정표시장치(LCD)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의 패널 공급 과잉이 더해지면서 올해 전 세계 디스플레이 매출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할 전망이다.
15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전체 디스플레이 매출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1331억8000만달러(약 171조7620억원)가 예상된다. 이는 지난 2017년 이후 5년 만에 전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매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다. 지난 2020년 전년 대비 14% 늘었고, 지난해에는 26%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일상 회복을 위한 대면활동이 재개되면서 디스플레이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특히 TV용 LCD 패널 매출이 가장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옴디아가 전망한 올해 TV용 LCD 패널 매출은 258억달러(약 33조2690억원)로, 전년 대비 32% 감소할 전망이다. 전체 TV 판매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패널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TV용 LCD 패널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6월 상반월(1~15일) 32인치 TV용 LCD 패널 가격은 30달러(약 3만8680원)를 기록, 한 달 만에 20% 떨어졌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상반월(87달러)과 비교하면 65% 하락했다. 그동안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55인치 이상 대형 TV용 LCD 패널의 가격 내림세는 뚜렷했다. 최근 한 달간 55인치와 65인치 TV용 LCD 패널 가격은 각각 7.3%, 9.3% 떨어졌다. 75인치도 6.3%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LCD 공급 과잉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BOE는 최근 TV용 LCD 패널 목표 출하량 6500만대에서 6000만대로 감축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출하량이 10% 이상 많다. HKC와 CSOT의 목표 출하량 전년 대비 3~5%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노룩스의 경우 오히려 올해 목표 출하량을 10만대 늘린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패널 가격 하락으로 중국 업체들의 감산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서로 눈치만 보면서 감산을 최소화하고 있다”라며 “중국발 공급 과잉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 생산을 줄이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매출 하락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초 LCD 사업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해까지는 올해 말까지 LCD 사업을 유지할 계획이었지만, 올해 들어 패널 수요가 급감하면서 철수를 앞당겼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앞으로 중소형 OLED와 대형 퀀텀닷(QD)-OLED 패널에 집중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도 OLED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삼성디스플레이와 비교해서는 여전히 LCD 의존도가 높다. 업계는 LG디스플레이 매출에서 LCD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65%를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증권가는 LG디스플레이가 올해 2분기 200억~3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얼마나 빨리 OLED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국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장단기적인 실적이 결정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LCD 가격에 따라 실적이 결정되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요와 가격 결정권이 있는 OLED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중국 업체들은 디스플레이 수요가 살아날 때 LCD 생산능력을 앞세워 디스플레이 주도권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라며 “OLED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