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이재명 경기지사 관련 뉴스에 지지세력들이 줄줄이 옹호 댓글을 달았다. /카페 회원 제공

필명 ‘패헤XXX’씨는 회원 수 107만명의 부동산 관련 네이버 카페 ‘아름다운 내집갖기’에 올라오는 뉴스의 댓글 단골손님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에 어김없이 “곽상도 무소속 의원의 아들이 잘못했다”라는 취지의 기사 캡처 사진과 댓글을 달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한 변호사가 1000억원가량을 챙겨 강남 노른자위에 건물을 샀다’라는 내용의 기사에 “본인이 스스로 설계했다는데 왜 정부는 수사 안 하나”라는 식의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판 글이 게재되자 “미국으로 떠난 대장동 키맨에 국민의힘 보좌관이 연루돼 있다”라거나,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던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잘못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 캡처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이는 화천대유 논란과 무관한 기사 댓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복수의 카페 회원은 “’패헤XXX’를 포함 ‘팩XX’, ‘사랑하며XXX’ 등 ‘손가락 혁명군(손가혁·이재명 경기지사의 강성 지지자)으로 추정되는 일부 아이디가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 관련 의혹 기사에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댓글을 달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라면서 “이런 식으로 여론을 조작,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했다.

매일 3000만명이 찾는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여론 조작으로 추정되는 조직적 댓글 활동이 활개 치고 있다. 네이버 카페뿐 아니라 네이버 뉴스 댓글, 블로그, 지식인(in) 등 이용자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성 서비스가 다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특히 네이버 뉴스 서비스 이용률은 80% 수준으로 다른 인터넷 포털을 압도하고 있어 정치 뉴스 댓글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댓글 자체를 제재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라면서도 “네이버가 문제 소지가 있는 댓글에 대해 제재를 한다지만, 이마저도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만큼 편향적인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개인이, 다수가 아닌 이해관계 당사자의 편향된 시각을 반복적으로 접했을 때 함께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네이버는 사회 주요 화두에 대해서라도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중립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 하루 댓글 수 제한·클린봇도 무용지물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네이버 출신의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홍보수석 시절 문 대통령과 산책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재 네이버 뉴스의 경우 본인 확인된 사용자 1인당 한 기사에 달 수 있는 댓글이 만 하루 기준 20개, 답글(대댓글)이 40개, 공감·비공감을 누를 수 있는 횟수가 최대 50회로 각각 제한돼 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무제한으로 신고할 수 있다.

유죄로 결론 난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받고 도지사직을 잃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함께 아이디 2000여개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대선 전후로 유리한 댓글을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를 통해 네이버 상단에 노출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네이버에서 재직하던 윤영찬 부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초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됐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우회, 순공감순을 끌어올려 ‘효율적으로 여론 조작하는 비법’도 네이버 카페 등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군 댓글에는 ‘좋아요’를 눌러 공감 수를 늘리되, 적군에는 ‘먹금(먹이금지, 무대응을 뜻함)’에 적극 신고하라는 것이 골자다.

한 여초 카페에 공지된 한남(남성 비하) 댓글 신고법. 한남 댓글을 모조리 신고해야 효율적으로 여론을 선점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카페 캡처

친(親)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성향의 한 네이버 카페에는 민주당 대선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 결과를 다룬 네이버 뉴스 댓글에 이 같은 방식으로 상위에 노출돼 있던 이재명 지사 지지 댓글을 뒤집었다는 성과 글도 올라와 있다.

편향적 댓글 정황은 이념뿐 아니라 여성이나 지역,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데도 나타나고 있다. 청년참여연대가 최근 약 3주간(2021년 7월 27일~8월 16일) ‘네이버 이용자 대상 혐오 표현 노출 경험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 인원 275명 가운데 85.5%인 236명은 네이버 이용 중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178명(75.4%)은 네이버를 이용할 때마다 ‘거의 항상’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도 했다. 이들이 혐오표현을 주로 접하는 서비스는 뉴스 검색, 댓글이었다. 혐오표현의 대상은 주로 여성(192명)이었고, 성소수자·지역이 각각 13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외국인’이라고 답은 117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이런 혐오발언은 네이버가 인공지능(AI) 기술로 자동으로 감지해 숨긴다는 ‘클린봇’마저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페미는 정신병이 맞는 것 같다(여성 혐오)”, “홍어, 수박들 부들부들(호남인 혐오)”, “틀딱(노인 비하)들만 모였나” 같은 비하 댓글이 클린봇 활성화에도 버젓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 “댓글조작 공범 피하려면 모니터링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댓글 조작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제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댓글 공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제2의 드루킹 사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라면서 “네이버가 댓글 공작의 공범으로 취급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니터링, 필터링 수위를 더욱 강화해야 하며, 이를 외부 기관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도 “선거 국면에서는 한시적으로라도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여론 호도를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댓글이 어느 정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먼저 필요하다”면서 “실제 여론을 심각하게 호도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댓글창을 아예 없애든지 실명 확인을 하는 절차를 밟아야겠지만, 현재 기준에선 인터넷 자유를 희생하기 어렵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