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삼성전자의 갤럭시 언팩(신제품 공개) 행사를 두고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다. 중국 업체들은 갤럭시 언팩 행사 직전에 삼성전자와 연관 지어 자사 신제품을 공개하는 ‘김 빼기’ 전략을 꺼내 들었고, 삼성전자도 언팩 공식 영상으로 애플을 도발했다.
◇ 북미 시장 노리는 원플러스 “(반값 폰) 2개가 (폴더블) 1개보다 낫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원플러스는 갤럭시 언팩 전날인 지난 10일 인스타그램 미국 계정에 폴더블(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처럼 보이는 자사 신제품 사진과 함께, 이튿날 갤럭시 언팩 행사가 열리는 시간과 같은 ‘동부시각 8월 11일 오전 10시’(한국시각 11일 오후 11시)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3세대 폴더블폰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를 발표하기로 한 삼성전자에 맞서 원플러스도 폴더플폰을 깜짝 공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게시물의 정체는 폴더블폰 공개가 아니라 기존 바(Bar)형 스마트폰 원플러스9을 50% 할인한다는 이벤트였다. 추가로 공개된 영상에서는 폴더블폰처럼 보이던 것이 2개의 원플러스9으로 분리되면서 ‘50% 할인’ 이벤트가 안내됐다. 원플러스는 “2개가 1개보다 낫다(Two is better than one)”라고도 했는데, 비싼 삼성 폴더블폰 1개보단 반값 할인하는 자사 스마트폰 2개를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북미 소비자들에게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해외 IT전문매체 ‘더버지’는 “삼성전자가 언팩 행사를 열었는데, 원플러스가 마냥 참을 수 없는 관심에 목마른 듯하다”라고 평했다. 다른 매체 ‘포켓린트’도 “원플러스가 삼성전자의 언팩 행사로부터 관심을 빼앗으려 했다”라고 했다.
원플러스는 북미 시장에 힘을 주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3강 중 하나인 오포로부터 2013년 독립했다가 지난 6월 다시 합병된 이 회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 북미 시장 판매량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428% 급증하며 LG전자의 빈자리를 차지해 나가고 있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7% 느는 데 그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LG전자의 사업 철수가 다른 업체에 큰 기회를 가져다줬고, 현재는 원플러스가 점유율을 (가장 많이) 늘렸다”라고 했다.
◇ 하루 먼저 신제품 보인 샤오미 “3년 내 삼성 제치고 1위 되겠다”
2분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 2%포인트 차이로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 중인 샤오미는 아예 갤럭시 언팩 하루 전인 지난 10일 저녁에 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은 “향후 3년 안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겠다”라고 선언했다. 현재 1위인 삼성전자를 끌어내리겠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샤오미는 플래그십(고급형) 스마트폰 ‘미믹스4’를 통해, 삼성 갤럭시Z폴드3에도 적용된 최신 기술인 ‘언더 디스플레이 카메라(UDC)’를 먼저 선보였다. UDC는 전면 카메라 구멍(펀치홀) 위에 픽셀(화소)을 듬성듬성하게 덮어 가리는 기술이다. 미믹스4는 또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업계 최초로 퀄컴 스냅드래곤888플러스를 탑재해, 갤럭시Z폴드3(스냅드래곤888)보다 높은 성능을 뽐냈다.
샤오미의 도발은 실제로 삼성전자에 위협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 최대 시장인 자국에서의 우위를 앞세워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시장에선 이미 삼성전자를 따돌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분기 애플을 제외한 안드로이드 5G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샤오미가 25.7%로 1위를 기록했고 삼성전자는 15.6%로 4위에 머물렀다.
◇ 애플워치·에어팟 겨냥한 듯한 갤럭시워치4·버즈2 영상
삼성전자도 당하기만 한 건 아니다. 신제품 공개 영상을 통해 최대 라이벌인 애플을 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워치 신제품 갤럭시워치4의 트레일러 영상은 갤럭시워치의 원형 디자인을 연상케 하는 원반 모양 물체가 굴러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애플워치의 디자인을 연상케 하는 사각형 물체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사이 원반은 매끄럽게 바닥을 구르며 저만치 앞서나간다.
이어서 원반은 나란히 세워진 사각형 물체들을 건드린다. 사각형 물체들은 원반에 맞고 도미노처럼 맥없이 쓰러진다. 쓰러진 도미노 잔해는 다시 더 큰 원을 이루며 갤럭시워치4로 변한다. 한국어 유튜브 버전만 13일 기준 60만 조회수를 올린 이 영상을 두고 ‘갤럭시워치가 애플워치를 추월하고 무너뜨릴 것이다’라는 선언을 재치있게 표현했다는 누리꾼 댓글 반응이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갤럭시워치4는 스마트워치 시장의 절대강자 애플에 맞서기 위해 삼성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다. 애플이 시장 점유율 33%로 1위를 차지한 데 반해 삼성은 8%에 불과하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지난 1분기). 삼성은 상황 반전을 위해 자체 운영체제(OS) 타이젠을 버리고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 지난 7년간 꿈꿔왔던 OS 독립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갤럭시워치에 안드로이드를 탑재해 갤럭시 스마트폰과의 연동성을 높임으로써 애플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무선이어폰 신제품 ‘갤럭시버즈2’의 트레일러 영상에서도 도발이 이어졌다. 삼성은 기존 유선이어폰에서 줄만 자른, 애플 에어팟 특유의 ‘콩나물’ 디자인을 연상케 하는 이어폰을 보여주며 “무선이어폰 시대가 도래했지만 진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라고 했다. 뒤이어 콩나물 줄기 부분이 사라진 무선이어폰이 나타나며 “드디어 귀에 쏙 하고 딱 맞는 콤팩트 슬림 디자인의 (갤럭시)버즈2가 등장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왔다.
이를 두고 ‘갤럭시버즈2가 에어팟보다 더 진화한 무선이어폰’임을 묘사한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갤럭시버즈2는 이르면 이달 공개될 애플 에어팟 3세대와 전면전을 펼치게 된다. 외신에 따르면 에어팟 3세대는 기존 ‘콩나물’ 디자인을 유지하고 갤럭시버즈2(14만9000원)와 비슷한 159~199달러(18만6000원~23만2000원)의 가격대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