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자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프란스 차기 대통령 유력 주자 마린 르펜 국민연합(RN·옛 국민전선) 의원의 1심 판결이 31일(현지시각) 내려진다. 유죄 판결 시 202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출마가 어려워질 전망이어서, 프랑스 정치 판도에 중대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BBC 등에 따르면 르펜 의원은 유럽의회 자금을 부당하게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프랑스 검찰은 르펜 의원이 유럽의회 의원 재직 당시 약 450만유로(약 72억원)에 달하는 EU 자금을 자신의 정당 및 측근의 활동비로 유용했다고 보고 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의원. /AP연합뉴스

수사는 2017년 프랑스 유럽의회 대표부가 감사 과정에서 국민전선 의원들의 보좌관 급여가 실제 근무 여부와 불일치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르펜 의원 외에도 전·현직 국민연합 인사들을 포함한 20여명이 조직적으로 EU 자금을 전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르펜 의원에 징역 5년과 공직 선거 출마 금지를 구형했다. BBC에 따르면 검찰은 특히 출마 금지 조치가 항소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발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법원이 유죄를 확정, 검찰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르펜 의원은 2027년 프랑스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파리 형사법원은 오는 31일 르펜 의원과 피고인 20여명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다.

BBC 분석에 따르면 유죄 선고와 동시에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되는 시나리오 외에도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먼저 무죄 선고는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점쳐지나, 유죄 선고는 하되 공식 선거 출마 금지를 유예하거나, 단기적으로 출마를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르펜 의원은 유죄 선고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남지만 2027년 대선에는 출마할 수 있게 된다.

르펜 의원 변호인단은 해당 혐의가 적용되는 법은 2016년에 시행돼 사건 당시(2004~2017년)엔 존재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르펜 의원은 이번 재판을 두고 “정치적 사형선고” “국민의 의지를 향한 매우 폭력적인 공격”이라며 사법적 탄압을 주장하고 있다.

르펜 의원은 국민전선 창당자인 장 마리 르펜의 딸로, 출마 자격이 박탈된다면 프랑스 대선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르펜 가문 후보 없이 치러지게 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네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르펜 의원은 지난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결선에 진출하며 프랑스 정치의 핵심 주자로 떠올랐다. 최근엔 여론조사에서 모든 경쟁자를 앞서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최대 경쟁자로 꼽혔다.

사법 리스크에 빠진 르펜을 대체할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 /AP연합뉴스

이번 재판은 프랑스 국내 정치뿐 아니라, 유럽 정치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 내 극우 세력은 최근 유럽 각국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흐름의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르펜 의원이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경우, 당의 지도체제 전환이 불가피해진다고 WSJ는 전했다.

르펜 의원이 출마하지 못할 경우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가 대체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바르델라는 29세의 젊은 정치인으로, 유럽의회 의원을 역임하고 당 대표직을 맡아 젊은 층과 중도층에서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당에서는 차기 총리 후보로 육성되던 인물이다. 하지만 르펜 의원만큼의 전국적 인지도와 결집력은 부족하다는 분석도 많아, 실제 대선 경쟁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WSJ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