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정당인 공화당 소속으로 처음으로 흑인 여성 하원의원이 된 미아 러브 전 의원이 4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4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흑인 공화당 여성이자, 유타주에서 두 번의 임기를 지낸 러브가 23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4년 10월 미아 러브 당시 공화당 소속의 유타주 하원의원의 모습. 3년간 뇌종양 투병 생활을 해오던 그녀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AP=연합뉴스

러브 전 의원은 1975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이민자 부모의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의 부모는 코네티컷주 노르워크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간호사로, 아버지는 청소부이자 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트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러브 전 의원은 미 콘티넨털항공 승무원과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다가, 1998년 선교사인 제이슨 러브와 결혼하며 유타주에 정착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언니를 따라 가톨릭에서 몰몬교로 개종한 바 있다.

러브 전 의원은 2003년 새러토가 스프링스 시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역구 예산을 균형 있게 관리하고, 소규모 정부를 주장하며 이름을 알린 그녀는 2009년 시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에는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소속의 6선 의원인 짐 매터슨에게 0.31%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미 하원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녀는 2013년 자서전에서 시장에 당선된 것에 대해 “저는 인종이나 성별, 혹은 하이힐 때문에 새러토가 스프링스에서 선출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지역이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계획과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 사람들의 표를 받았다”고 밝혔다.

러브 전 의원은 2014년 하원 선거에 재출마해 7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녀는 최초의 흑인 공화당 여성 의원이자, 유타주의 최초 흑인 의원이었다. 201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유타주 인구의 89.2%가 백인인 점을 고려하면, 러브 전 의원의 당선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2016년 재선에 성공하며 입지를 더욱 다졌다.

2016년 음담패설 파문이 일었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자, 그녀는 공개적으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2017년, 트럼프가 자연 재해로 자국을 떠난 아이티인들에게 부여된 일시적 보호 지위를 종료하고,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저속한 언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그녀는 “미국 국민과 무분별하게 비방한 국가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러브 전 의원은 2018년 민주당의 벤 맥아담스에게 700표 차로 패하며 3선 도전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 직후 “미아 러브는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서 선거에서 졌다”고 비난했으며, 이에 대해 그녀는 “트럼프의 발언은 그가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명확히 보여준다. 진정한 관계는 없고, 편리한 거래만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원을 떠난 러브 전 의원은 CNN 정치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2020년 선거인단에서 유타 주의 선거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22년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3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러브 전 의원을 기리며 그녀의 가족은 “미아가 우리 삶에 끼친 깊은 영향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난다”고 전했다.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러브 전 의원은 진정한 친구였다”며 “그녀의 봉사 유산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