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 중인 불법 이민자 추방을 놓고 사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보수성향의 대법원장이 비판 성명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판사들이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사진을 올리면서 사법부를 조롱하고 있다. 이렇듯 트럼프의 사법부 공격으로 삼권분립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조인, 그중에서도 판사들이 신변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늘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10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의 자매 중 한 명의 집에 경찰관이 출동했다. 이 집 우편함에 폭탄이 있다는 메일이 수신됐기 때문이다. 메일에는 “우편함이 열리자마자 폭탄이 폭발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메일과 달리 폭탄은 없었지만, NYT는 “최근 몇 주 동안 판사와 그 가족들이 받는 위협과 협박을 보여주는 한 사례”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 AFP 연합뉴스

판사를 대상으로 한 협박 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폭탄 위협은 물론 판사 자택으로 피자 배달이 오기도 한다. 판사의 집 주소가 대중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소송을 담당하는 한 판사는 NYT에 익명으로 “그들은 나와 내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며 가족의 안전을 걱정했다.

이 밖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출생시민권 폐지, 연방 정부 구조조정 등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대상으로 한 위협 사례도 있다. 출생시민권 폐지 시도를 차단하는 첫 번째 판결을 내린 존 C. 코페누어 워싱턴DC 연방법원 판사도 거짓 신고 전화(스와팅·swatting) 위협을 받았다. 존 J. 매코넬 주니어 로드아일랜드 연방 판사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한 연방 자금 3조 달러 동결 시도를 차단한 뒤, 수많은 전화와 이메일이 법원에 쏟아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판사를 대상으로 한 위협과 협박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 지지자들이 미국 사법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판사를 대상으로 한 위협과 협박은 증가 중이다.

트럼프와 사법부의 충돌은 지난 18일 극에 달했다. 트럼프는 1798년 제정된, 이른바 ‘적성국 국민법’에 근거해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 추방에 나섰고, 제임스 보스버그 워싱턴DC 연방법원 판사는 추방 명령을 일시 중단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 불법 이민자를 태운 비행기를 엘살바도르로 보냈다. 이후 트럼프는 보스버그 판사를 겨냥해 18일 SNS에 “급진적 좌파 미치광이인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는 이어 “나처럼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지명했다”고 공격했다. 선출직인 자신이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트럼프는 또한 “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악랄하고 폭력적이며 미친 범죄자가 미국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베네수엘라 국적의 불법 이민자를 비행기에 태워 추방한 것을 놓고 여론전에서도 우위에 있음을 자신했다. 이에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성명을 내고 “지난 200년 이상 법관 탄핵은 사법부 결정을 둘러싼 이견에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고 입증돼 왔다”고 우려를 표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임명됐고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NYT는 “판사가 위협을 받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사법부 구성원들은 온라인과 현실에서 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증언한다”고 우려했다. 판사에 대한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샬 서비스’에 따르면 판사를 향한 적대적 위협은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