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국 정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된 약 8만 페이지의 미공개 기밀 문서를 공개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미 해병 출신인 리 하비 오스왈드의 총에 맞아 서거했다.

케네디 암살 사건은 공식적으로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지만,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이 케네디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문서들이 1963년 암살 사건을 정부에 대한 불신의 상징으로 만든 수십 년 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섯 가지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총을 맞기 약 1분 전, 차량에서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CIA가 수십 년간 문서 공개를 방해한 이유

케네디 암살 사건 조사 과정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 세계 작전과 관련된 수천 건의 문서가 수집됐다. CIA는 일부 잠재적인 폭로들이 첩보 프로그램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1995년 문서에서 CIA는 튀니지에 CIA 기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튀니지가 이웃 국가와의 관계에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튀니지에 CIA 기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튀니지와 리비아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튀니지 정부가 기지 철수를 요청하면, 미국 정부는 리비아, 북아프리카의 안정성,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IS)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CIA, 피델 카스트로의 연관성 조사

CIA는 당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케네디 암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수년에 걸쳐 조사를 진행했다. 카스트로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 미국 정부에 대한 보복으로 케네디 암살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됐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전 조사에서 CIA는 “카스트로 정권이 연루되었다는 확정적인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새로 공개된 문서에는 CIA가 카스트로를 겨냥한 파괴 활동과 암살 시도를 지원했다는 내용이 추가로 담겨 있다.

카스트로는 CIA가 자신의 설탕 산업을 공격하고, 연설 중 하수도 시스템에 폭탄을 설치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했다. CIA 요원들은 카스트로를 암살하는 대가로 미국 마피아에게 10만 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합의 문서에는 “피델 카스트로 암살 대가 10만 달러, 라울 카스트로는 2만 달러, 체 게바라는 2만 달러였다”고 적혀 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문서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공개된 후, 18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 전시돼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 대통령과 CIA의 친밀한 관계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1963~1969년 재임)은 CIA 멕시코 지부장과 아돌포 로페스 마테오스 당시 멕시코 대통령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마테오스는 CIA 지부장의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를 맡았으며, 멕시코시티에서 CIA의 전화 감청 작전에 조용히 참여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마테오스가 CIA 지부장에게 “이제 카스트로를 제거하기로 결정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고 언급돼 있다. 마테오스는 CIA 지부장과 자신의 고문 로렌조 코지오와의 대화를 통해 CIA가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알게 됐다.

▲CIA, 로버트 케네디 참석 예정 회의 도청

케네디가 암살된 1963년, CIA는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숲속에 있는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이 집에서는 두 명의 쿠바 망명자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었으며, 이 회의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당시 미국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가 참석할 가능성도 있었다.

공개된 문서에는 CIA의 첩보 활동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다락방, 지하실, 또는 차고에 테이프 녹음기를 숨긴다”거나 “첫 번째 테스트는 (중략) 안전하우스에서 청취 지점으로의 신호가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당시 전자 장비의 가격이 현재 가치로 약 2만8000달러에 달한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CIA, 워싱턴에 오스왈드 도청 비밀 유지 요청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의문 대부분은 오스왈드가 케네디에게 총을 겨누기 몇 달 전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시간과, 그곳에서 쿠바 및 소련 대사관 관계자들과 만난 것과 관련이 있다. 1998년에 작성된 문서에 따르면 CIA는 오스왈드와 멕시코, 쿠바 관계자들 간의 전화 통화를 녹음했지만, 이후 이 파일을 폐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4년 전인 1994년, CIA 멕시코 지부는 오스왈드 도청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말 것을 워싱턴에 요청했다. CIA가 멕시코 관계자들과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멕시코와 미국 간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CIA는 문서에서 “마약 밀매, 테러, 멕시코에서의 반정보 활동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높은 관심을 고려할 때, 지부는 협력 관계 유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