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방차 제조업 시장의 독과점 심화로 미 전역에서 소방차 가격이 급등하고, 인도가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가용 소방차 부족으로 화재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17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소방차 제조업은 현재 3개의 회사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스파르탄, 페라라, E-ONE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레브 그룹, 특수차량 전문 기업 오쉬코시, 그리고 오스트리아 기반의 로젠바우어 등이다. 이 세 회사는 미 소방차 제조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레브 그룹의 경우 미국 내 소방차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각 지역의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소방차를 제조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잇따라 경영난에 빠지면서 문을 닫거나 월스트리트의 투자 회사들에 의해 통폐합됐다. 레브 그룹도 소방차, 구급차, 스쿨버스, 도로 청소차 제조업체들을 인수하면서 성장했다.
문제는 공공 부문에 기대고 있는 레브 그룹이 오로지 이윤 창출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2017년 레브 그룹 상장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티모시 설리반은 “우리가 인수한 회사들은 4~5%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10% 이상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레브 그룹은 상장 이후 스파르탄, 페라라 등을 인수하며 각 기업의 효율성 향상에 더욱 집중했다.
소방차 산업은 자동차 산업과 달리 생산 자동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 이는 소방서가 보통 10~15년마다 차량을 교체하며, 각 차량이 맞춤형 사양으로 제작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브 그룹은 이러한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2021년 펜실베이니아와 버지니아 공장을 폐쇄하며 생산시설 규모를 약 3분의 1로 축소했다.
결국 소방차 인도 지연이 심화됐다. 팬데믹 이전 레브 그룹의 주문 적체 규모는 약 10억 달러(약 1조4428억원)고, 주문 후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1년에서 최대 18개월이었다. 그러나 현재 주문 적체는 40억 달러 규모(약 5조7716억원)이며, 인도까지 2~3년을 대기해야 한다. 주문 적체 규모는 4배, 인도 기간은 2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오쉬코시 역시 주문 적체 규모가 코로나 이전과 대비해 4배 증가했다.
독과점 업체들의 ‘배짱 장사’는 일선 소방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방차 가동률 90%를 목표로 하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소방서는 최근 몇년 간 평균 78%의 소방차만 운용할 수 있었다. NYT는 “지난달 퍼시픽 팰레시에즈에서 거센 화재가 발생하자 LA 소방서는 가용 인력을 긴급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서 “그러나 당시 추가 인력을 태울 수 있는 소방 차량 수십 대가 운행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7일 LA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긴급 출동 요청을 받았던 소방관 추옹 호는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던 많은 소방관을 태울 차량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LA 소방서장 크리스틴 크롤리는 지난 1월 약 100대의 소방 차량이 운행 불가 상태였고, 이는 퍼시픽 팰리세이즈 화재 대응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당시 소방 엔진 40대, 사다리차 10대, 구급차 등 기타 차량 40대의 운행이 불가능했다.
LA 소방 당국은 산불 발생 전 제출한 예산안에서 “많은 차량이 예상 수명을 초과했으며, 유지보수 비용 증가와 부품 부족으로 가동 중단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호씨는 노후 차량의 부품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 인터넷을 뒤져 교체 부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칸소주 벤턴의 소방서장 길 카펜터도 “예전에는 하루 만에 부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10개월이 걸린다”고 불평했다.
국제소방관협회(IAFF)의 회장 에드워드 켈리는 “경쟁이 없는 시장에서의 독점은 착취로 이어진다”면서 “(소방차 업체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어야 만족하고, 언제쯤 공공의 안전을 이윤보다 우선시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최근 소방차 업체들도 인도 지연을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방차는 일반 자동차와 달리 표준화된 모델을 갖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각 도시의 소방서가 지역과 지형, 인구 밀도 등의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소방차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레브 그룹은 표준화된 소방차 모델을 개발해 제작 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레브 그룹 임원인 마이크 비르니그는 “현재의 주문 적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