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지난 2분기 대중국거래 비중이 10%를 기록하면서 지난 1분기보다 20%p 이상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분기 ASML의 가장 큰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이번 분기 대만(41%)과 한국(33%)에 크게 뒤진 점유율을 보이며 3위에 그쳤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를 두고 “워싱턴의 지속적인 중국 수출 금지 압박에 ASML의 매출이 중국 본토에서 다른 시장으로 이전되는 초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SML이 20일 발표한 2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ASML이 주력하는 노광장비 판매에서의 중국 비중은 1분기 34%에서 2분기 10%로 절반 이상 쪼그라들었다. 지난 분기 ASML의 가장 큰 거래처였던 중국은 이번 분기 3위로 밀려났다. 1분기 점유율 상위 3위를 차지했던 대만(22%)은 2분기 19%p 증가한 41%를 기록하면서 거래 비중 1위로 올라섰다. 지난 분기 점유율 상위 2위였던 한국(29%)도 4%p 오른 33%의 점유율을 보이면서 2위를 유지했다.
SCMP는 “ASML의 변화된 매출 지형은 미국이 ASML의 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로비를 강화하면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5월 네덜란드를 방문한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은 네덜란드 정부 관계자와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중국 정부에 구형 노광장비 판매 금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EUV 노광장비에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에 ASML의 EUV 노광장비 공급 차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중국은 여전히 EUV 노광장비를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베닝크 CEO는 20일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미국의 로비와 관련해 “우리는 정치인들이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있다”며 “중국이 반도체 산업, 특히 더 최첨단 기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본토로부터의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ASML 측은 조선비즈에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에 따른 ASML 사업 자체의 변화는 없다”며 “이번 실적 자료 중 국가별 매출 비교는 2분기에 출하된 장비를 기준으로 한다”면서 “2분기의 경우 EUV 장비의 출하가 많았기 때문에 구형 DUV 장비가 주로 출하되는 중국 시장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ASML은 반도체 업계에서 ‘대체불가’로 불리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한다. 노광장비는 빛을 이용해 반도체 기판이 되는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기기로, ASML이 주력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는 7나노 미만 반도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를 비롯해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생산기업을 모두 거래처로 두고 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길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찾아 직접 노광장비 수급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한편 ASML은 올해 2분기 54억유로(약 7조2287억원)의 순매출과 14억유로(약 1조874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1%, 영업이익은 33.4% 증가했다. ASML은 올해 3분기에도 비슷한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닝크 CEO는 “ASML의 장비 수요는 여전히 크다”면서 “올해 매출 성장률은 약 10%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