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신공장을 국내에 유치하면서 거액의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국회에서 법 개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같은 대규모 보조금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가능성이 있는만큼 법적 근거 마련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TSMC와 파트너십을 강화해 반도체 수급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TSMC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8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오는 12월 일본 정부는 국회에 입법 개정안을 제출해 TSMC의 일본 공장 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에는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이 야기하는 혼란에서 이같은 보조금 지원이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TSMC는 오는 2022년 소니의 반도체 공장이 있는 구마모토(熊本)현에 일본 공장을 짓기 시작해 2024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역시 일본 정부가 2019년부터 협상을 벌여온 TSMC 신공장 유치가 확정됐다며, 1조엔(약 10조원) 규모의 대형 민간 투자 등에 대한 지원책을 새 경제 대책에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TSMC 신공장 투자액 총 1조엔의 절반 수준인 5000억 엔(한화 5조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왔다. 다만 이같은 대규모 보조금 지원이 WTO 규칙에 부합하는 지는 일본 현지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닛케이는 “식량이나 에너지처럼 필수재가 된 반도체를 시장원리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확보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이지만,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한 거액의 보조금이 시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WTO 규칙 위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 보조금을 받은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낮은 가격으로 일본 국내에 공급할 경우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한국, 미국 등지에서 일본 수출이 줄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제소할 가능성이 있고, TSMC가 일본 공장 생산품을 저가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피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닛케이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WTO나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는 우회로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의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운영하는 기금을 활용해 지원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또 일본 정부의 TSMC 보조금 지원의 경우 WTO 협정을 즉각적으로 위반하는 ‘레드보조금’이 아니라 사례별로 위법성을 판단하는 ‘옐로 보조금’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으며, 옐로 보조금 위반으로 인한 손해와 보조금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