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첫날. 그는 예고했던 대로 중국에 관세를 물리는 대신, ‘틱톡 금지법’ 시행을 75일간 유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틱톡 금지법은 틱톡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가 270일 안에 미국 내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겠다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잠시 틱톡의 숨통을 틔워주면서도, 미국 사업권 지분 50%를 미국 기업에 넘겨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중국이 거래를 거부할 경우 적대적 행위로 간주해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관세는 10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에서만 1억70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계 숏츠(15초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롭게 시작된 미중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틱톡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자국 안보를 해치는 것은 물론, 기술 경쟁에서 중국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중국은 “기업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며 틱톡의 지분 매각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경기 침체의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코앞까지 다가온 만큼, 중국도 틱톡을 두고 줄다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틱톡이 미중 패권 다툼의 최전선에 서게 된 과정을 짚어본다.
◇ 2019년부터 틱톡 안보 위협 급부상
틱톡이 미국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부터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그해 1월 바이트댄스를 강력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당시 미국 이용자 4000만명의 개인정보가 틱톡을 통해 중국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군인들도 틱톡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정보가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이용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달 뒤인 2월, 미국은 13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틱톡이 불법적으로 이용했다며 570만달러(약 82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바이트댄스는 즉시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을 내며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틱톡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틱톡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있고, 교사들도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틱톡에 가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틱톡 존재감이 커지면서 발톱을 세우는 이들이 등장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공화당의 톰 코튼 상원의원이었다. 이들은 2019년 10월 미 국가정보국에 틱톡의 안보 위험을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틱톡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 방첩 위협”이라며 “중국 법률은 개개 회사에 공산당 정보 업무를 지원하고 협조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며칠 뒤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바이트댄스가 2017년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에 미국의 소셜미디어 앱 ‘뮤지컬.리’를 인수한 것이 국가안보상 위협이 되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슈머의 서한을 받은 미 육군도 비슷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때 미 육군은 신병 모집 수단으로 틱톡을 활용하고 있었다.
바이트댄스는 “미국 틱톡 사용자 정보는 미국에 저장되며 데이터도 싱가포르에서 보관한다”고 해명했다. 2020년 5월에는 미국 월트디즈니 고위 임원을 최고경영자(CEO)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틱톡이 중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미국 법률과 규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CFIUS의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는가 하면, 3년간 미국에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소용 없었다.
◇ 틱톡 강제매각 시도는 트럼프 첫 임기 때도 있었다
2020년 7월 31일, 트럼프가 “틱톡을 미국에서 금지할 것”이라며 “내일(8월 1일) 서류에 서명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러다 며칠 뒤 마음을 바꿨다. “45일 내 틱톡 사업을 매각하라”고 바이트댄스에 통보한 것이다. 틱톡 강제매각의 첫 번째 시도다. 첫 번째 유력 인수자로 떠오른 곳은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바이트댄스로선 어차피 틱톡 미국 법인을 팔지 못하면 쫓겨나게 될 처지여서 헐값에라도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년 전 시작된 CFIUS의 조사 결과가 이때 나온 것도 트럼프에 힘을 실어줬다. CFIUS는 미국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악용을 위해 미국 내 틱톡 자산을 전부 매각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트럼프는 매각 시한을 90일로 설정한 행정명령에 재차 서명했다.
하지만 매각 협상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중국이 콘텐츠 추천, 빅데이터 수집 등 인공지능(AI) 분야 기술을 ‘수출 제한 기술 목록’에 포함하면서다. 바이트댄스가 틱톡 사업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면 자국 규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바이트댄스는 MS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이어서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이 등판했다. 오라클이 틱톡의 미국 데이터를 관리하고, 일부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됐다. 하지만 2021년 2월, 양사 간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트럼프가 재임에 실패하면서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팔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틱톡에 대한 견제는 계속됐다. 2021년 6월 트럼프가 서명한 틱톡 강제매각 행정명령이 폐기됐지만, 틱톡을 비롯한 해외 기술 앱들의 안보 위험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시작됐다. 바이트댄스는 미국 이용자 정보를 미국 내에 저장하겠다고 재차 약속했지만, 충분치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22년 12월 미 상원에서 정부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2023년 3월 미 하원에서는 바이든에게 틱톡 사용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통과됐다. 당시 이 법을 주도한 공화당의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은 “틱톡은 스마트폰에 침투한 정찰풍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틱톡의 미국 내 접속을 전면 차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틱톡을 금지하는 것은 미국 내 사용자의 헌법상 자유와 충돌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해 4월, 270일 안에 미국 내 틱톡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는 ‘틱톡 금지법’이 상원을 통과했다. 매각 시한이었던 이달 19일, 미국 내 틱톡 다운로드 등 서비스가 중단됐다. 그러던 다음날, 트럼프가 구원투수로 나타나 ‘75일 유예’를 외친 것이다.
◇ 틱톡, ‘제2의 화웨이’로 낙점… 바이트댄스 매각 나설지 주목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중 패권 다툼의 중심에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가 있었다면, 2기 행정부에서는 틱톡이 낙점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입장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매기는 것보다 틱톡 지분 인수가 더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취임 첫날)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고, 이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면서 “중국에 대한 관세를 보류하려는 움직임은 틱톡 거래를 위한 협상 카드로 보인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누군가가 틱톡을 사서 (지분) 절반을 미국에 주면 우리가 그에게 사업 허가권을 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며 테슬라와 오라클의 인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인수 희망자들 사이에서는 바이트댄스가 그간 틱톡 매각 의사가 없다고 밝혀오긴 했지만, 이번에 틱톡의 미국 서비스 중단이 잠시 현실화하면서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