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시에 있는 현대차(005380) 수소연료전지 공장. 두 대의 기계가 종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EGA를 한 장씩 부드럽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 EGA는 수소연료전지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핵심 부품으로, EGA 220장을 쌓으면 서브 스택이 된다. 이 서브 스택 두 개에 기타 부품을 조립하면 90㎾(킬로와트) 출력의 수소연료전지 완성이다. 현대 수소차인 넥쏘가 이 수소연료전지를 달고 있다. 현대차 광저우 공장 관계자는 “기계 한 대당 20분에 하나씩 서브 스택을 만들고 있어 연간 6500개의 수소연료전지를 생산할 수 있다”라고 했다.
현대차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브랜드인 HTWO가 세계 최대 수소 시장인 중국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무기는 26년간 축적한 기술력이다. 중국은 탄소 중립을 위해 수소 에너지와 수소차 시장을 전폭 지원하고 있지만, 토종 기업의 기술력은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인 만큼 해외 기업인 현대차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현대차는 수소 산업체인의 핵심인 수소연료전지 부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 2030년 이후 中 시장 급성장 전망… 10만개까지 생산 확대 가능
지난해 6월 완공된 HTWO 광저우 공장은 현대차 최초의 해외 수소연료전지 거점이다.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돼 있는, 첨단 기술이 집약된 공장이지만 다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공장 내부는 물론 부지 절반가량이 여전히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를 대비한 것이다. 오승찬 HTWO 광저우 법인장은 “현재 연간 생산능력이 6500개지만 실제 생산량은 1000개”라며 “시장 상황에 맞춰 확장을 고민하고 있는데, 추후 연간 10만개까지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생산능력의 15배 수준이다.
현대차가 생산능력을 처음부터 최대치로 가져가지 않는 이유는 중국 수소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수소차 판매량은 7653대로, 현재까지 누적 3만대가 보급됐다. 전기차 중심의 신에너지차(전기·수소·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지난해 949만5000대에 달한 것을 고려하면 극히 적다. 하지만 무시할 순 없다. 지난해 판매량만 봐도 한국(4757대)의 1.5배인 데다, 글로벌 최대 수준이다. 올해 판매량은 1만대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 법인장은 “이미 중국 수소차 시장은 세계 넘버 원”이라며 “(현재 절대적 판매량 자체는 적지만) 2030년 이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는 정책의 힘이 크다. 수소라는 단어가 중국 정부 보고서에 처음 들어간 것은 2019년이다. 이후 거시 정책 가이드라인인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부터 수소를 미래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본격 논의가 시작될 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에서는 수소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계획이 더욱 구체화할 가능성이 크다.
오 법인장은 “(14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이후) 지난 4년간 추이를 봤을 때, 처음엔 수소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미약했지만, 지금은 이해도가 많이 올라왔다”라며 “2030년 이후인 다다음번 계획이 나올 때쯤엔 인프라 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수소 산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2035년 중국 수소차 누적 보급량이 1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정점(탄소피크)을 찍고 2060년 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이른바 ‘쌍탄(雙炭)’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도 중국 정부는 수소 시장에 전폭적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수소 없이는 탄소 중립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매우 높은 열이 필요한 철강·시멘트 등 제조업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탄소 배출을 해결할 수 없지만, 수소는 가능하다. 현대차 HTWO가 첫 생산 거점을 중국 광둥성 광저우로 결정한 것도 정부의 지원 의지 영향이 컸다. 광저우는 2021년 수소차 시범사업 도시로 선정된 5개 도시 중 하나다.
중국이 전기차 강국으로 올라선 만큼 수소차 시장의 성장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현대차 판단은 그렇지 않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소차는 대형 트럭과 버스 등 상용 부문에서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의 경우 무거운 데다 충전 시간도 길어 안 그래도 차체가 무겁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상용차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중국에 HWTO와 함께 버스·트럭 완성차 법인인 HTBC를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현대차 경쟁력은 20여년 축적한 기술력
세계 최대 시장인 데다 정부 지원까지 강력한 만큼 기업 간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만드는 중국 토종 기업만 60개가 넘고, 그중 탑티어급 기업도 이화통, 리파이어 등 4곳이 있다. 오 법인장은 “수소 부문의 경쟁은 전기차와 다른 형태로 전개될 것”이라며 “(수소연료전지와 같은) 부품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누가 더 기술력이 뛰어난지, 누가 더 싸게 만드는지가 경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소 전투에 나서는 현대차의 무기는 기술력이다. 현대차는 1998년 연료전지 연구 초기부터 수소 관련 기술을 집중 개발했다. 이후 2013년 투싼 ix35 수소전기차의 세계 최초 양산을 거쳐 올해까지 26년간 수소 에너지 기술에 투자해 왔다.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인 CES에서는 수소 에너지의 생산·저장·운송 및 활용을 아우르는 ‘HTWO 그리드’ 솔루션을 미래 비전 중 하나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수소는 저희 대(代)가 아니고 저희 후대(後代)를 위해서 준비해 놓는 것”이라며 육성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 법인장은 “20년 이상의 개발로 쌓은 경쟁력은 제품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신뢰도 높은 좋은 제품, 상품성 있는 제품을 먼저 준비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했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그들도 기술 연구·개발(R&D)에 굉장히 많이 투자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라고 했다.
현대차가 중국 수소 시장의 발전에 맞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미 현대차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도 중국 수소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독일 보쉬는 중국 남서부 충칭에 수소연료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 도요타는 지난 8월부터 베이징 수소연료전지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생산법인은 도요타와 합작투자사인 시노하이텍이 각각 5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차도 중국 토종 기업들과 현지화에 힘쓸 계획이다. 지난해 광저우 공장 준공 당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중국 내 우수한 기업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