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부채 상한법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혼란이 악화하고 있다. 의회가 만든 예산안과는 별개로 정부의 부채 한도를 정한 법률의 적용 유보 시점이 두 달 이상 지나면서 내달 중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부도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야당인 공화당은 부채 한도를 늘릴 수 없다며 버티는 가운데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관련 법안 처리 문제로 내분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사당 건물. /신화 연합뉴스

미 상하원은 2021회계연도 종료일인 30일(현지 시각) 연방정부의 내년도 임시예산안을 가결했다. 정부의 일시적 업무정지(셧다운) 사태를 막기 위해 오는 12월 3일까지 연방정부에 임시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예산안을 표결에 부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주도의 하원이 당초 예산안과 함께 통과시킨 부채 한도 유예안은 삭제됐다. 부채 상한을 유예 또는 상한하지 않겠다는 공화당의 주장에 따라 예산안만 따로 처리한 결과다.

미국에선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22조 달러)이 법률에 명시돼있다. 이러한 상한선 적용을 지난 2019년 여야 합의 하에 올해 7월 31일까지 유보하기로 했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경기부양에 쏟아부었고, 9월 기준 국가 부채는 법정 한도를 초과한 28조4000억달러에 이른 상태다. 문제는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의회가 부채 한도 관련 후속 입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 맨친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30일(현지 시각)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내 정책 고문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과 예산 관련 협상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여기에는 야당의 반대 외에 집권여당 내 중도파와 진보파 간 주도권 다툼도 얽혀있다. 공화당은 원칙적으로는 부채 한도 조정에 반대하고 있지만, 앞서 여야가 합의한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초당적 인프라 법안을 하원이 통과시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민주당 내 진보 성향 의원들은 초당적 인프라법과 별개로 3조5000억 달러의 사회복지성 인프라 법안도 함께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 등 중도파는 인프라법 규모가 너무 크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여야가 50석씩 양분한 상원에선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예산 조정 절차를 동원하면 통상 법안 처리에 필요한 60표 대신 단순 과반 찬성으로 가결할 수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만장일치가 필수적이라 중도파 의원을 설득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사회복지 패키지 법안의 규모를 줄이려 시도했지만 진보파 의원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 공통된 의견을 도출한 뒤에야 공화당에 협상을 제안할 수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28일(현지 시각)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부채 한도 조정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번 기회에 부채 상한법을 아예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의회가 예산안을 가결할 때 이미 연방정부의 지출 규모를 승인한 것인데, 부채 상한선을 별도의 법으로 또 지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부채 상한 설정은 미국의 신뢰와 신용에 매우 파괴적인 위협”이라며 “이 법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28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의회의 부채 한도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에 대비해 각종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초당적인 법안을 통해 언젠가는 부채 상한선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정치적 문제다”라고 말했다. 또 “내 기억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했던 마지막 때 1억달러가 소요됐다”며 “이런 상황 자체가 잘못됐다”고도 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