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생명보험사인 한화생명이 주주총회장에 주주를 입장시키지 않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을 승인하고 주주들에게는 기업의 현황을 설명하는 자리의 참석을 막은 명백한 주주권리 침해라는 지적이다.

한화생명 주총 행사장 입구. 행사 시작 40분전부터 입구를 봉쇄한 뒤 경호원을 통해 출입을 통제했다. 조폭을 연상케 하는 경호인력을 동원해 행사장에 처음오는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 손희동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한화금융센터 63 본관 2층 세미나실에서 주주총회를 연 한화생명은 이날 오전 9시로 예정된 주주총회에 자사 임직원들로 보이는 주주들을 미리 착석시킨 후 다른 일반 주주의 입장을 막았다. 주총장인 세미나실 입구는 경호원들을 배치,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주총장 앞자리를 맡기 위해 서둘렀다는 한 일반 주주는 “주가도 계속 빠지는 데 배당도 못받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주총 개막 40분 전에 왔는데 이미 자리가 다 찼다고 해 기가 막혔다”며 “항의라도 할라치니 조폭 같은 경호원들이 앞을 막아 계엄령 선포 당시 국회출입을 봉쇄한 군인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다른 일반 주주들은 세미나실 옆에 마련된 10평 남짓되는 소규모 회의실 입장을 안내 받았다. 회의실에는 대형 TV를 설치, 주주총회 현장을 생중계했다. 주주의 총회 참석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지만, 다른 주주들은 정작 회사 임원이나 이사들과는 분리된 채 주총을 지켜봐야 했다.

덕분에 주주총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사는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감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의 안건을 상정했고, 미리 짜맞춘듯한 주주들의 협조로 반대 발언 하나 없이 개회 20여분만에 모든 절차를 마쳤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별도기준 720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전년대비 17% 증가했다. 하지만 해약환급 준비금 적립을 이유로 배당을 하지 않았다. 이에 주가가 2600원대까지 떨어져 전 금융주 가운데 가장 낮은 주가순이익비율(PBR)을 기록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까지 한화금융센터 별관 1층 다목적홀에서 주총을 열었다. 올해는 건물 리모델링으로 인해 장소를 옮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정기주주총회는 통상 별관에서 개최됐으나 최근 별관이 리모델링 공사중인 관계로 부득이하게 본관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것”이라며 “기존 다목적홀보다 공간이 협소해 별도 공간을 추가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TV 모니터로 확인한 본 주총장인 세미나실은 2~3인용 테이블에 주주 한 명씩 앉힌 채 자리를 채워 얼마든지 주주들을 입장시킬 수 있는 상태로 보였다. 누가봐도 일반 주주를 들이지 않기 위한 꼼수임을 가늠케 했다.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 상법 368조에 따르면  총회의 결의는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한다. 주주가 현장에서 제대로 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었다면 이는 주주의 권리를 침해당한 것으로 본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본 주총장의 입장을 제한하되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시청 가능하도록 하고, 발언권도 보장한다면 얘기는 좀 다르다. 하지만 한화생명의 경우처럼 주총 행사장에서 친 회사 성향의 주주들만 모아놓고 의결을 처리한 것이라면 소외받은 주주는 손해배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주총장 내부 공간. 2~3인용 테이블에 회사 임직원들로 보이는 주주들이 띄엄띄엄 착석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부분은 임원석이라고 미리 비워 놓았다. 마치 코로나 시국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손희동 기자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변호사는 “주총을 개최하지 않았다거나 절차상 문제가 있어 주총 자체의 취소나 부존재를 다툴만한 사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일부러 협소한 장소를 섭외하는 등의 꼼수로 일반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로 보여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청구의 사유는 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그 위법성이 인정이 되고 그 지시를 한 대상이 대표이사로 드러날 경우 대표이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IT조선 손희동 기자

IT조선 전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