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서울대 영어영문학 학사·정책학 석사, 미국 밴더빌트대 로스쿨 법무박사, 행정고시 35회,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전 대통령비서실 외신 대변인, 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 / 사진 뉴스1

“통상계 이단아에서 통상계 주류로 복귀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다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이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통상 정책은 지금은 사라진 ‘스무트-홀리법’을 연상시킨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이 과세 대상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했던 법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방식이 통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2017~2020) 때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상대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맞받아쳤지만, 이제는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201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총괄하며 트럼프 정부를 직접 상대해 본 인물이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에 누구보다 익숙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가 정말 보편 관세 정책을 시행할까.

“가능성이 매우 크다. 관건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다. 2018년 트럼프가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한 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진 않았다. 1년 2개월 동안 네 단계에 걸쳐 진행했다. 처음엔 중간재, 그다음에는 기계류 등의 자본재, 이후 소비재순으로 관세를 매겼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당시 이를 설계한 사람이 케빈 해싯, 지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된 인물이다. 트럼프가 이번에 구상하는 보편 관세도 세율을 단계적으로 올리거나 중간재부터 관세를 매겨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있다.”

보편 관세를 협상용 카드로 사용할 거란 관측도 있다.

“그렇다. 미국이 보편 관세 제도를 시행할 것이란 전망이 분명한 만큼 미국과 협상을 통해 관세를 면제받는 국가도 나타날 것이다. 트럼프는 1기 정부 때 해외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을 포함한 6~7개국이 미국과 협상을 벌였는데, 절반은 협상이 타결돼 관세를 면제받았지만, 실패한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관세가 부과됐다. 즉, 트럼프가 구상하는 보편 관세는 전혀 보편적이지 않을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이 관세를 우려해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려고 한다. 자칫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까 우려스러운데.

“미국의 통상 정책이 워낙 불확실해 우리 기업이 자체적으로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사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산업 공동화는 막아야 한다. 과거에는 선진국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를 고도화했다면, 이제는 제조업 부흥이 더 중요해졌다. 자국 내 제조업이 있어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기술 고도화도 결국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야 가능하다. 특히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제조업의 중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다.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기 위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사용했고, 트럼프는 관세라는 채찍을 사용하려고 한다. 한국도 미국처럼 산업 정책을 잘 설계해 우리 기업을 지원, 제조업을 부흥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에 고관세를 매기면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중국의 공백을 채울 수는 있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무역법 301조를 활용해 고관세를 매겼을 때, 중국은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하는 방식으로 이를 일부 상쇄했다. 이번에도 중국이 트럼프의 고관세에 대응해 자국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에 밀어내기식 수출을 할 수 있다. 그럼 되레 글로벌 시장의 경쟁만 더 치열해지고, 우리 제품이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

트럼프 1, 2기 정부 통상 정책 공통점과 차이점은.

“공통점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둘째, 대중 견제, 셋째, 제조업 부활과 재건이다. 차이점은 그 기조가 1기 때보다 더 강하고 속도감 있게 이뤄질 것이란 점이다. 1기 때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트럼프 1기 정부 때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당시 트럼프는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매기고, 대중 관세를 19.3%까지 높였다. 거의 이변이었다. 초세계화 시대 통상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단아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트럼프 방식이 미국 통상 정책의 메인스트림(주류)이 됐으며, 상대국의 반응도 바뀌었다. 1기 때는 트럼프의 통상 정책에 반발해 상대국이 ‘WTO에 제소하겠다’고 맞받아쳤다면, 지금은 ‘가급적 미국이 원하는 것에 맞춰 협상하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아마 트럼프 2기 정부가 끝날 때쯤 미국의 관세는 전체적으로 인상돼 있을 것이다.”

추후 협상을 통해 관세를 되돌릴 수는 없나.

“한 번 올라간 관세는 다시 내리기 어렵다. 실제로 2018년 트럼프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를 부과한 사안에 대해 2022년 WTO가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정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해당 조치가 그대로 유지됐다. 우리가 이번에 미국과 협상할 때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2017년 한미 FTA 재협상을 총괄했다. 당시 미국의 요구 사항을 50개에서 5개로 줄이는데 성공했는데, 어떤 전략이 통했던 건가.

“숲과 나무를 동시에 봤다. 단순히 눈앞의 협상 조건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까지 고려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와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전선(戰線)이 많았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과 협상을 빠르게 타결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국내외에 ‘한국과 이렇게 신속하게 협상을 끝냈다’는 성과를 내세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양보할 부분은 양보했고, 미국도 협상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싶어 했기에 우리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만약 협상이 길어져 미국이 다른 국가와 먼저 협상을 끝내버렸다면, 한국 입장에선 불리하게 흘러갔을 수도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첫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분주한 주변국과 달리 한국은 대통령 공백 상태인데, 우리도 서둘로 미국과 대화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조급해하면 안 된다. 협상엔 적기(適期)가 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트럼프가 중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 등에 대해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최우선 타깃 국가는 아니다. 따라서 너무 빠르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적기에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번 트럼프 2기 정부에 대응해 우리에게 필요한 통상 전략은.

“뒷받침된 통계로 스토리를 강조해야 한다. 우리가 대미 투자 1위, 미국 내 일자리 창출 1위란 점을 내세우고,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채 제조업을 재건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한국이 필수 파트너란 점을 강조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보기에 한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이 무역 적자를 줄일 방법을 우리가 제시하는 게 좋다. 지금 정부에서도 고민하고 있겠지만, 석유, 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것도 대안이다.”

앞으로 미국을 상대할 통상 실무자에게 조언한다면.

“예상되는 모든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협상에서 어떻게 나올지 미국도 다 예상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발탁된 제이미슨 그리어는 트럼프 1기 USTR 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한미 FTA 재협상 당시 단 한 번도 협상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라이트하이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당시 펼쳤던 논리와 주장, 모두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