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비즈니스 모델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색만 맞추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의 1%를 SK가 책임지겠다는 최 회장의 공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각 관계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8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딥 체인지 방법론에 따라 ESG 경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딥 체인지란 2016년 3월 최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한 후 그해 5월 처음 열린 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내놓은 키워드다. “기업이 서든데스(돌연사)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려면 ‘딥 체인지(근원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ESG 경영에 전 그룹의 역량을 투입하는 것도 결국 근본적 변화를 위한 것이다. 최 회장은 작년 10월 개최된 CEO 세미나에서 “지금까지 ESG 이슈들을 적당히 대응 또는 수비하고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하고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직접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앞서 2018년 CEO 세미나에서도 최 회장은 “환경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반대로 기회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환경 주도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친환경 전환을 위한 기술 개발 등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SK그룹 제공

이에 SK그룹은 ESG 경영 이식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그룹 차원에서 ESG 경영을 견인하고 점검하기 위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 내에 ‘환경사업위원회’를 두고 있다. 환경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이 위원회는 올해 이산화탄소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ESG의 또다른 축인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거버넌스위원회’도 두고 있다. 작년 말 SK그룹은 이사회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혁신하겠다며 “시장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프리미엄급 지배구조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가치(SV)위원회는 각 관계사들의 ESG 경영 활동을 화폐가치로 환산해 이를 외부에 공표하고 있다.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결국 기존 비즈니스 모델 역시 확 바뀌어야 한다. 석유 사업에서 출발해 탄소 배출량이 많은 SK이노베이션(096770)은 2030년까지 환경 분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로(0)’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그린밸런스 2030′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폐플라스틱에서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하는가 하면, 전기차 배터리 생산부터 폐배터리 활용까지 관련 생태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017670)은 AI와 머신러닝 기반 분석기법을 활용해 건물과 공장의 전력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E-옵티마이저’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000660)는 201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 사업장 폐기물 매립 제로화 인증을 받는 등 폐기물 배출 최소화, 자원 재활용 극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SK그룹 내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SK E&S는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지를 국내 곳곳에 건설하고 있다.

SK그룹의 ESG 경영은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SV위원회는 최근 SK그룹이 작년 한 해 동안 창출한 사회적 가치가 전년 대비 60% 늘어난 1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고용과 납세 등 간접적 경제 기여 성과와 ESG 성과를 합한 것이다. 다만 환경 성과는 여전히 마이너스(-) 2조8920억원으로 전체 사회적 가치 증가세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그룹 측은 “환경 성과를 개선해야만 사회적 가치 성과의 구조적 개선이 가능하다”며 “2024년부터는 감소 추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며, 그 이후엔 로드맵에 따라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K그룹의 ESG 경영 의지는 최근 발표한 투자 계획에서도 읽을 수 있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5년간 247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중 약 30%에 달하는 67조4000억원을 전기차 배터리 설비와 수소, 풍력,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 ‘그린 비즈니스’에 투입하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2030년 기준 전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인 2억톤의 탄소를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를 앞당길 방침”이라고 말했다.